저급 비방전은 이제 그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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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최근 각정당간에 벌어지고 있는 저급한 성명전과 품위없는 말의 공방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서로 원색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으로 헐뜯고 조롱하고 약점이나 들추는 방식으로 성명,반박성명이 꼬리를 물고 있는데 명색이 정권을 잡겠다는 사람들의 논쟁치고는 너무 저수준이고 유치하다.
요즘 신문에 연일 보도되는 민자·민주간,민주·국민당간의 말싸움은 「사기」 「대통령병」 「망신」 「정서불안」… 등의 동원되는 말에서 보듯 공인의 공언이라고 믿기 어려운 민망한 내용이 많다. 가령 시비거리가 된 클린턴 미 민주당대통령후보의 사신문제를 보더라도 논쟁을 벌인다면 클린턴이 당선될 경우의 대미정책에 초점을 두는 것이 옳을텐데 성명전에서 보게되는 것은 사신으로 득을 보자는 발상과 그런 득을 못보게 막자는 발상의 충돌뿐이다. 이미 시행중인 민원간소화조치를 김영삼후보의 공약으로 광고한 것은 고의였든 실수였든 민자당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사기극의 소도구」라고 매도한 민주당의 성명 역시 상식이하의 저질 공격이라고 할 밖에 없다.
우리는 정당간 이런 수준이하의 논쟁을 일일이 논평할 흥미도 없지만 이같은 상호비방이 서로간의 감정을 더욱 악화시켜 더 독랄한 표현과 더 원색적인 폭로전으로 에스컬레이트되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바로 흑색선전·인신공격의 판이 되는게 아닌가.
이번 대선이야말로 정말 깨끗하고 공정하게 한번 치러보자는 국민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중립내각까지 들어선 판에 선거주역들인 정당들이 초입에서부터 이런 저질의 비방전을 벌이는 것은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정당들은 이런 말싸움에서 이겼다고 좋아하고,졌다고 속상해 할지 모르나 우리가 보기에 이런 싸움의 승패는 득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오히려 욕설과 험구경쟁에서 이길수록 표를 잃을 공산이 다분하다.
우리는 각 정당의 내부분위기가 어떻길래 이런 자해적 성명전이 며칠씩 계속되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후보진영마다 신문에 대문짝만한 광고로 외쳐대는게 무엇인가. 언필칭 대화합이요,깨끗한 정치요,정치개혁이 아닌가. 화합적이지도 깨끗하지도 개혁적이지도 못한 이런 저급의 말싸움은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유의 저질충동을 받는 일이 자주 있을텐데 참는 것이 이기는 길임을 깨닫고 다시 이런 이전투구에 휩쓸리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기를 당부한다.
그러잖아도 대선정국은 지금 매우 뒤숭숭하다. 불과 50일 남은 대선을 앞두고 김우중씨가 나선다는 등 여전히 변수가 많다. 기성정치권이 얼마나 허술한가 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각정당 지도부는 정국현실을 냉정히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보며,우선 정치권의 언어 정화부터 신경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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