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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학원 단속'이 꼬인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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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인종 서울시교육감이 벌인 '학원과의 전쟁' 한달 간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3천명 가까운 단속인력과 2억5천만원의 비용을 들인 대대적인 단속에서 적발된 불법 고액 과외는 단 한 건이다. 나머지 단속 실적은 자잘한 행정적 잘못들이다. 오후 10시 이후의 심야교습은 사라졌다는 게 서울시교육청의 자랑이지만 과연 이것으로 사교육 열풍이 가라앉았다고 믿을 학부모가 몇이나 있을까.

설사 단속 실적이 많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애당초 서울시교육청의 '학원 단속'자체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학원 단속이 꼬인 첫번째 이유는 그 시발이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강남의 부동산 값을 잡겠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데 있다. 강남 아파트 값이 폭등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사교육 수요가 몰린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이를 분산시킬 수 있는 교육대책을 부동산 대책에 넣을 작정이었다. 강남의 대체지역으로 거론된 판교 신도시에 학원단지를 건설하겠다든지, 강북 뉴타운에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를 대거 신설하겠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여기에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이 발끈했다.

그래서 나온 게 강남학원 단속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서 교육 분야를 빼는 대신 학원을 때려잡아 강남에 몰리는 교육 수요를 분산시키겠다는 것이 이번 단속의 의도였다. 국세청이 강남의 유명학원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학원에 대한 세무조사나 교육청의 단속은 수요보다 공급을 줄이는 정책이다. 수요가 여전한데 공급을 인위적으로 줄이면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보통은 가격이 오른다. 단속을 피하고, 세금을 더 내는 데 따른 비용이 늘어나는 데다 줄어든 학원교습 기회를 잡기 위해 돈을 더 내겠다는 수요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만일 (정부 규제로)가격을 올리지 못할 경우에는 학원 입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단속의 눈을 피한 불법과외나 정원을 무리하게 늘리는 등의 편법이 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학원교습에 대한 초과수요를 해소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수요가 있는 한 공급을 인위적으로 줄여 시장을 위축시키는 정책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에도 고액 불법과외는 기승을 부렸고, 학원산업은 번창하기만 했다.

현재의 입시제도가 유지되는 한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입시교육에서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사교육과 경쟁해 이길 가망도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학원은 이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미국의 대학입시에서도 한국식 학원교습이 선풍을 일으킬 정도다. 대치동 학원가는 한국의 입시제도에 가장 잘 적응한 경쟁력의 집적체다.

강남에 사는 한 학부모는 서울시교육청의 학원 단속을 두고 "경쟁력 없는 공기업이 단속권을 쥐고 경쟁력 있는 사기업을 퇴출시키려는 꼴"이라고 빗댔다. 신성한 교육을 영리 목적의 기업에 비유한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실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교육 현장의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서는 교육당국이 내놓는 어떤 사교육비 경감 대책도 성공하기 어렵다.

교육문제를 푸는 첫 단추는 교육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교육공무원과 교육학자들이 제 아무리 이런저런 방법이 좋다고 해봐야 학생과 학부모들이 외면하면 먹히기 어렵다. 이젠 교육 수요자들의 의견이 우선이다.

김종수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