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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家] 김상신씨의 부암동 중심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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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산의 도시다. 어느 동네에 가 봐도 산이 마주 보이지 않는 마을이 별반 없다. 눈앞에 마주선 산이 은연중 우리를 어루만진다. 산이 없었다면 서울 사람들은 그간의 과밀과 과속을 견뎌낼 에너지를 제대로 충전할 수 있었을까. 부암동 중심서원 마루에 앉았을 때 나는 서울이 깊은 산록 속에 깃들인 도시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산은, 그게 비록 지리산이 아니더라도 신비한 골짝과 샘물을 지닌다. 그리고 거기 사람을 품어 안게 마련인 모양이다. 청와대 바로 뒤 자하문 고개 위, 북악의 산록은 용케도 마을 하나를, 고요하고 해묵고 그래서 슬쩍 남루해진 스무남짓 되는 마을 하나를 숨기고 있다.

행정구역은 종로구 부암동, 전래말로는 뒷골. 봄이면 앵두꽃과 복사꽃이 마을 전체를 뒤덮어 말 그대로 자하(紫霞)를 이루는 동네다. 이런 마을이 광화문에서 5분거리 안에, 사람 때를 타지 않은 1960년대식 농촌의 모습을 유지한 채 숨어 있다니. 새삼 산의 너른 품에 놀란다. 뒷골 사람들은 산비탈에 씨앗을 뿌려 곡식과 채소를 거두고 겨울이 되면 그것들을 갈무리해 살며 울도 담도 없어도 남의 물건에 손댈 줄을 모른다. 원래 인간의 성정은 빼앗고 뺏기고 다투고 시샘하게 타고난 건 아니었을 게다. 좁은 땅에 여러 사람이 복닥거리며 살다 보니 제 식구 입에 밥 한술 더 넣기 위한 근시안적 사랑에서 생겨난 습성일 뿐.

이 서울 속 별천지인 산속 마을에 산사람도 속인도 아닌 별종 인간이 하나 산다. 머리를 파랗게 밀고 휴대전화를 걸면 목탁소리가 울려오는 김상신(50)씨. 동생과 제수씨와 어머니와 딸린 가족들은 뒷골의 집에 모여살고 자신은 고개 너머 산마루에 독각선실을 지어놓고 공부하고 기도하는 반승 반속의 삶을 꾸리는 중이다. 그는 한때 승려생활을 하다 환속해 출판사를 경영하고 연극연출을 하고 배우 노릇도 하고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신은 산을 떠나선 살 수 없을 듯했다. 오래도록 그 궁리만 계속하다 결국 여기 중심서원을 지으면서 중간 형태의 방식을 발견해낸 셈이다. 그는 자신을 승려가 아니라 낭인으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집 이름도 일부러 사원이 아니라 서원이라 붙여뒀다고 말한다. 낭인이라기엔 주머니가 너무 무겁지 않으냐고, 집이 좋은 것을 핀잔해 봤더니 여러 사람을 위해 열어놓기 위한 집이라고 얼른 유연하게 도망쳐버린다.

독각선실이 있는 집의 이름은 '중심서원'. 중심서원의 뜻을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원래 우주의 중심이란 어디에도 없는 거지요. 없다는 것은 내가 앉아 있는 바로 거기가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세계의 중심은 나로부터 뻗어나가는 것이니 그런 의미에서의 중심이지요. 그리고 서원이라고 붙인 것은 도산서원이 그랬듯이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자고 가기도 하라는 뜻이지요"라고 했다. "정말 아무나 묵어가게 열어뒀다는 말이냐?"고 캐물었더니 "요샛말로 코드가 맞는 사람에게 열린 거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에게 열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코드가 맞건 말건 진정 원하는 사람이라면 거리낌없이 열어야지요. 여지껏 여기와서 공부하다 간 사람이야 많았지요. 불교 공부뿐 아니라 시 쓰는 이들, 명상하는 이들, 건축 공부하는 이들이 와서 산바람을 마시고 사진들을 찍고 마음을 다스리고 가곤 했지요"란다.

뒷골이 소박하게 지은 집이라면 중심서원은 마음먹고 잘 지은 집이다. 그는 기도도 하고 손님도 맞고 살림도 할 수 있는 집을 지어보려고 건축가를 물색하던 중 서점에서 건축 잡지를 보다 이공건축의 류춘수씨를 알게 됐다. 전통건축과 현대건축 간의 조화를 모색하는 그의 고민이 자신의 당면 문제와 일치했고 도가적 기질이 상통한다는 것도 알아챘다. 여러번 만나 여러 시간을 이야기했다. 땅은 예전에 미리 사 놓았다. 산속에 숨어있는 풍치지역이라 값은 아주 쌌다. 가까운 친지가 뒷골에 예전부터 살고 있어 건축 허가도 수월했다. 인왕산과 북한산이 집안 어디에 앉아도 눈앞에 장엄하게 펼쳐지는 집터였다. 건축가는 집이 놓일 위치에 반해 설계비를 자청해 반으로 깎아줬다. 대신 건축주가 자신의 설계에 대해 아무런 추가 요구를 하지 말아달라는 조건을 붙였다. 덕분에 이집 지붕은 용마루 대신에 빛이 쏟아져 내리는 천창을 낼 수 있었다. 분명 대들보와 서까래가 있는 목조 기와 지붕인데 가운데가 뻥 뚫려 그리로 하늘이 가득 들이차는 퓨전 스타일의 지붕을 만들었다. 고개를 젖히면 언제라도 날씨와 하늘빛을 확인할 수 있다. 밤이면 서까래 사이로 북악의 별들이 반짝이고 보름이면 달빛이 밤새껏 마루를 밝히는 멋진 명상공간이 만들어졌다. 독각선실 마루의 높이는 세 단으로 구분했다. 점층적 구조가 하늘을 우러르는 종교적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편하게 걸터앉을 수도 있도록 배려했다. 이것 말고도 침실에서 자고 일어나 복도를 걸어 거실로 나서는 아침의 첫 순간, 북한산의 보랏빛 바위가 눈앞에 다가오는 경이를 이 집 주인은 중심서원 설계의 절정으로 치고 있다.

지하층은 서재, 일층은 침실과 거실과 부엌, 이층은 천장이 뚫린 명상공간을 가지고 지붕을 조선기와로 이은 중심서원. 유리와 나무로만 지어져 공간이 서로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면서 독특한 두께와 켜를 이루는 집이다. 마주한 산봉우리가 유리에 되비쳐 드는 구조가 의외의 깊이와 고요를 자아낸다. 그러면서 북악의 골짜기에 겸허하게 웅크리고 있어 일부러 찾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집의 다른 특징 하나는 툇마루가 많다는 점이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문 앞에는 빠짐없이 툇마루를 놓았다. 신을 벗고 일단 마루를 밟은 뒤에야 실내에 들어갈 수 있고 바깥으로 나올 때도 마찬가지니 행동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 느림을 일부러 유도한 장치가 툇마루다. 툇마루에 앉아 잠시 산을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으니 그 산은 실제 거기에 솟은 북한산과 인왕산의 봉우리이기도 하고, 유리에 비친 허상이기도 하고, 그게 반복적으로 투영하는 산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오래 이 집에 살면 명상적 기질이 생길 수밖에 없겠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산자락을 허물어 집을 앉히면서 주변에 있는 나무를 최대한 살려내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나무가 있으면 그 부분의 마루장을 망설임없이 잘라냈다. 마루를 잘라내고 제 자리를 잡은 은행나무.참나무.가죽나무는 집과 온화하게 공존한다. 나무는 조신하게 가지를 늘어뜨릴 뿐 세월이 지나도 웃자라 집을 짓누를 만큼 무성해지지는 않는다. 나무가 그렇게 자신을 제어할 줄 아는 염치를 가졌다는 것도 여기 와서 처음 듣는 깨달음이다. 집의 중심을 관통하는 나선형 계단, 거기서는 늙은 가죽나무가 내다보인다. 가죽나무 줄기를 타고 토종 능소화가 무성하게 줄기를 뻗어갈 때, 집을 뚫고 들어온 은행나무가 제 잎을 노랗게 물들여갈 때, 그럴 때가 중심서원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김상신씨는 자신의 시집 서문에 '능소화 위를 비상하는 까마귀들에게 바친다'라는 헌사를 써뒀다.

아무리 어린 나무라도 함부로 베어내지 않는 것은 뒷골의 살림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네모 반듯하지 않게, 둥그런 곡선으로 널찍하게 마루를 짜넣은 앞 베란다에도 군데군데 나무를 위한 구멍들이 뚫려 있다. 거기에 감나무가 있고 라일락이 있고 매실이 있다. 베란다에 앉아 라일락에 코를 가져다 댈 수 있고 손을 뻗어 감과 매실을 따 담을 수 있을 만큼 자연친화적인 풍경이다. 마당 있는 집을 지을 때 잊지 말고 일부러라도 응용해 볼 만한 공식인데, 나무에는 얼마간 가혹한 일이 될지 모르나 그걸 누리는 인간에게는 자연을 눈앞까지 바짝 끌어 당기는 묘미를 줄 것 같다.

열말들이 배불뚝이 장독이 놓이고 '앞산이 진종일 수굿하게 집안을 들여다보고' 밭에서 손수 기른 무.배추로 엮은 시래기 다발들이 줄줄이 걸린 뒷골 베란다의 풍경이 내게는 수직 실크 커튼을 드리운 호화주택의 거실보다 한결 편안하고 풍성하게 여겨진다. 내 눈이 미처 도시적 세련을 모르는 탓인가.

최근 어떤 인문학자에게서 "우리 도시 행정의 가장 심한 졸속은 산을 가리며 집을 짓게 허가해준 것"이라는 지적을 들었다. 물을 지키는 일 못지 않게 산을 지키는 일이 시급하며, 산수가 거기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세계관에 깊이 관여한다는 말도 들었다. 눈앞에 산을 두고 사는 사람은 세상의 원경을 볼 줄 안다는 것이다. 귀가 솔깃해지는 통찰이었다.

김상신씨 어머니 방에 들어갔다가 나는 참 읽을거리 풍성한 액자 하나를 발견해냈다. 8남매의 결혼 사진이 순서대로 한틀에 넣어진 사진이었다. 시인이고 소설가이고 '낭인'이고 목수인 자식들과 그 배필들이 일생의 맹세를 나눈 직후 긴장한 채 서 있다. 어머니는 거기에 대고 앉으나 서나 건강과 발복을 기원하며 손바닥을 비비신다. 그러다 눈을 들어 산을 본다. 거기에 펼쳐진 북악과 인왕과 북한산의 연봉을 내다보면 어머니는 괜히 편안해져 웃음을 지으신다고 한다. 중심서원은 서울의 중심, 산의 중심에 들어앉은 집이다. 그러면서 내가 중심이 되어 느긋하게 세상의 원경을 내다보는 집이다.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사진=변선구 기자

<사진설명>
광화문에서 5분거리,그 안에 사람 때가 묻지 않은 60년대 고향의 모습이 있습니다. 밤이면 서까래 사이로 북악의 별들이 반짝이고 보름이면 달빛이 수를 놓습니다. 이 집에 앉으면 사람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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