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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사고의 지평 넓히고픈 당신, 떠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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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다른 곳을 사유하자
니콜 라피에르 지음, 이세진 옮김,
푸른숲, 340쪽, 14000원

"우리는 늘 다른 곳을 생각한다."

이동과 변화, 전환, 탈출을 예찬한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의 이 말을 그의 400년 후배인 프랑스 사회학자 니콜 라피에르는 여태껏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는 새로운 지적 탐구의 길잡이로 사용한다.

그녀의 야심 찬 연구는, 독자를 헝가리 출신 사회학자 칼 만하임이 말하는 '자유롭게 떠도는 지식인(free-floating intellect)'의 발자국을 따라 걷게 한다. 노마드.파리아.디아스포라 또는 호보라 불리는 이들은 초대를 받았건 못 받았건 간에 원래의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골라 다니고 사회적 장벽이나 국경, 경계를 뛰어넘는 주변인이 되면서 얻은 유리된 경험은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더욱 예리하게 하고 사유의 지평을 무한히 확대한다. 그러한 비판적 사유의 힘은 저자가 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유대계 독일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말에서 더 잘 드러난다. "주변적 관계의 경험이 사회학자에게는 분명 나쁘지 않은 학교였다. 개인이 지배적 사회와 거리를 두고 변형되고 은폐되는 사회 중심의 권력 관계들을 예민하게 파악하기 좋은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망명 지식인들의 필연적인 정체성 회의에서 출발해 사회적 계급 이동, 혼성 문화, 대안 문화, 학제 간 연구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초에서 오늘에 이르는 '학문적 떠돌이'들의 비판적 사유 행태를 두루 섭렵한다. 현실에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들 간에 만남이 있었다면 벌어졌을 가상의 대화와 토론을 재구성해 보탠 것도 재미있다. 이른바 '떠돌이 지식인들'의 인명사전이라고 할 만한데 저자가 선택한 떠돌이들의 사진을 책 오른쪽 끝에 사전의 알파벳처럼 배열함으로써 순서에 관계없이 필요에 따라 찾아 읽을 수 있게 한 편집도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더해준다. 떠돌이 학자 주변을 떠돌면서 읽는 떠돌이 독자가 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듯하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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