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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믿을 정부의 품질인증(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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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직도 외국산 형광등만을 찾는 사람이 있다. 우산을 살 때도 외국 유명상표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우리들 주변에 많다. 그러나 국내 메이커들이 믿고 쓸 수 있는 제품의 생산을 게을리 한다면 소비자들의 외국산 선호현상을 나무라기만 하기도 어렵다. 무조건 애국심에만 호소해서 국산품을 애호하자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이제는 먹혀들지 않는다. 국내 기업들이 일상생활에서 지극히 많이 사용하는 형광등이나 모발 건조기같은 것까지 소비자 마음에 들도록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공업진흥청이 지난 상반기중 실시한 공산품의 품질조사에 따르면 대상 기업체의 제품 가운데 무려 29.2%에 이르는 업체의 제품이 기준에 미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10개 중에 3개 비율로 불량품이 생산·판매되고 있다는 것은 세계 12위의 무역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불명예다. 정부가 공인하고 있는 한국공업규격(KS)의 경우도 1백56개업체 가운데 34개 업체가 만들어내는 생활용품이 불량이었다.
KS표시만을 보고 상품을 고르는 일부 소비자들은 정부의 인증제도에 회의를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두번다시 국산품에 속지 않기 위해 아예 외국산을 찾게 된다. 이밖에 품질관리 등급사정공장의 제품임을 나타내는 「품」자 표시 제품이나,전기용품 안전관리법에 따라 형식승인을 받는 제품임을 알려주는 「전」자 표시 전기용품의 경우에도 상당수의 업체가 엉터리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판정되었다.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한 첨단제품 생산에서 그만한 불량률이 나왔다면 초기단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쉽고 간단한 공정을 거치는 생활용품에서마저 여전히 불량률이 높다는 것은 아직도 적당히 물건을 만들어 매출이나 올리겠다는 일부 기업인들의 망상과 제품생산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 근로자들의 근무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찮아 보이는 생활용품에서부터 기업이 신용을 걸고 근로자의 혼을 담지 않고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 거기에 무슨 고급기술이 필요하겠는가.
요즘 산업계에는 의식개혁의 하나로 신산업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품질의식의 선진화를 통해서 침체된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신산업운동의 기둥은 국제표준화규격(ISO)체제 및 품질경영체제를 산업계에 고루고루 이식시키는 일이다. 보다 나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수출하기 위해서는 공정의 모든 과정을 일정규격에 맞춰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운동이 성공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며,국내 품질인증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이 유통단속을 더욱 강화하고 불량품 제조업체에 대한 고발과 함께 그 명단을 공개해서 소비자들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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