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민을 피곤하게 하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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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그동안 민자당내부의 문제에 가급적 언급을 자제해 왔으나 최근 돌아가는 꼴은 지나치게 상궤에 어긋나는 것 같아 몇마디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자당안에 몇갈래 계파가 존재하고 수시로 의견충돌이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고,또 정당에는 그런 현상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최근 박태준씨의 거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민자당의 자해적 혼미상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중립내각이다,대규모 간첩단 적발이다 하여 정국전망이 극히 불투명하고 불안심리가 높은 터에 큰 책임을 맡고 있는 제1당의 이런 상태는 우리 사회의 예측가능성을 더욱 떨어뜨리는데 큰몫을 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의 민자당내부의 정치행태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박태준씨는 내각제를 대선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김영삼씨는 여기에 반대한다고 들리고 있다. 박씨는 자기요구가 관철안되면 선거대책위원장은 물론 최고의원도 내던지고 은퇴 또는 탈당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첫째,박씨의 내각제 요구가 왜 이 시점에 나왔느냐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민자당에 그대로 있던 지난 상당기간 박씨가 내각제를 들고나온 것을 본 일이 없는데 노 대통령이 탈당하고 난 후 왜 갑자기 내각제를 꺼내느냐 하는 것이다. 당초 3당통합 당시 내각제밀약이 있었다가 김영삼씨의 반대로 백지화되고 그럭저럭 대통령제가 당론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내각제를 지금 꺼낸 것은 일반의 추측대로 대통령탈당으로 구심점을 잃은 민정계의 자구책인가. 실제로 그렇다면 이건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내각제냐,대통령제냐 하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선택이 국가적 차원이 아닌 계파의 입지에서 주장된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박씨의 내각제주장이 평소 소신이었다면 훨씬 전에,최소한 후보조정과정에서 제기하고 지명대회에서 결판을 봤어야 했을 일이다.
두번째로 말하고 싶은 점은 논의의 제기방식이다. 내각제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왜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논리를 갖춰 제기하지 않고 밀실에서,지방에서 거론하며,그것도 계파간의 흥정거리처럼 제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누구편을 들어서가 아니다. 국회가 뒤늦게 열려 짧은 기간에 할 일이 산적해 있고 임박한 대선준비도 바쁜 터에 제1당에서 보이고 있는 정치행태가 너무나 상식밖이어서 이런 우려를 표하는 것이다. 지난날 김영삼씨가 그럴 때도 보기가 안좋았지만 이번 박씨의 당무거부,지방행도 보기가 안좋다.
우리는 각 당사자들이 가급적 빨리 태도를 명쾌히 함으로써 더 이상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지 말기를 바라며,민자당도 빨리 대선태세를 갖춰 페어플레이를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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