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온건파 입지감안「제한대응」/「간첩사건」사과요구 대북강경성명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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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북 책임시인 안하면 경협일단 중단/대화 계속 불변… 전면냉각은 없을듯
남한 조선노동당 간첩단사건으로 남북관계에 찬기류가 흐르고 있다.
7일 발표된 통일관계장관회의의 「대북성명」은 이 사건에 대한 당국의 강경입장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 성명은 최근들어 보기드문 강도로 북한을 비난하는 한편 재발방지장치를 강구하기 위해 정치분과위를 열 것을 요구하면서 우리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사태의 책임소재가 북측에 있음을 엄중하게 경고했다.
지난 6월초 핵사찰규정 합의무산과 관련해 정원식 전 총리와 최창윤 전 공보처장관·이동복 남북고위급회담 남측 대변인의 잇따른 대북비난성명으로 난기류가 형성된 이래 5개월만의 일이다.
그 이후 8차 고위급회담,김달현 북한 정무원부총리의 서울 방문,기업인의 방북금지 해제 및 남포조사단·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의 방북합의,이인모노인 문제해결을 위한 남북협상개시 등으로 이어진 「순조로운 국면」에 비하면 이같은 강경어조의 대북비난은 남북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간첩단」사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전면 냉각으로까지 후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북성명이 강성기조였음에도 성명발표뒤 최영철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남북대화 유지라는 기조는 변함없다』고 되풀이 강조한 것도 이를 뒷방침한다.
간첩단사건과 대북정책의 관계에 대한 정부내 논의에는 두가지 흐름이 있었으며 성명을 통해 나타난 대북정책에는 두입장이 절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분명한 사과를 받아야 하며 북측의 반성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남북대화를 유보해야 한다」는 견해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남북대화를 비롯,가능한 모든 관계는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팽팽히 맞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양론이 「사과 및 재발방지는 강력히 요구하되 남북대화기조는 유지한다」는 선에서 정리됐다는 것이 정부당국자의 설명이다.
이같은 설명은 간첩단사건을 발표한 당일 남포조사단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도록 허용한 「모순」과 최각규부총리의 방북연기를 비롯,강력 항의 및 사과요구라는 강성기조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의 기본방침은 변화가 없다」고 정부측이 거듭 강조하고 있는 사실의 의미를 이해시켜준다.
나아가 북한을 응징할 이렇다할 수단이 없다는 「현실적 고려」와 「도발은 긴장을 야기시킬 뿐」이라는 점을 북한내 강경세력에 보여줌으로써 온건세력의 입지를 강화시켜준다는 전술적 고려도 「제한대응」의 배경에 깔려있다고 정부당국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원적으로 운영될 것 같다.
당장은 정치분과위를 열어 간첩단 사건의 책임소재를 놓고 따지며 북측이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다음의 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우리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모든 책임은 북측에 있다」는 점을 경고했지만 「사과」를 남북대화 유지의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지 않아 이것이 새로운 긴장요인으로 등장할 것 같지는 않다.
정부는 또 11월부터 예정되어 있는 화해·군사 등 4개 공동위 회의 등 당국차원의 대화는 유지해나갈 생각이다.
그러나 민간부문의 대북정책은 사회·문화부문 접촉 및 방북은 허용하되 북한이 가장 아쉬워하는 경협을 위한 실질적 진전은 일단 차단한다는 생각이다.
이는 기업인들의 방북 제한으로 나타나 10월중에 방북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원·고합그룹인사의 방북은 당분간 유보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따라서 간첩단문제에 대해 북측이 사과 등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 어느 정도 남측을 만족시켜주지 않는한 경협을 중심으로 한 민간차원의 대북관계는 당분간 냉랭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 같다.
더구나 조만간 대선에 정치권 및 정부의 모든 관심이 집중될 것이 분명해 북한과 긴밀한 대화추진을 뒷받침할 정치적 수요가 없는 것이 대북정책의 소강기간을 연장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이같은 냉랭한 분위기는 차기정권 담당자가 결정된 뒤인 12월21일부터 24일까지 열리게 될 9차 고위급회담에 임박해서야 다소 풀려나갈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안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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