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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자며 대남공작이라니(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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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안기부에 의해 적발,발표된 일련의 북한대남공작단 사건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명백한 위반일 뿐 아니라 그 규모와 목표·활동·시기 등 여러면에서 우리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수사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조직관련자는 총 4백명인데 그중 95명이 검거되어 62명이 구속되고 나머지 8백여명은 도피 또는 잠적했다. 이번 사건으로 북한당국자들은 아직도 남한적화라는 시대착오적 환상을 버리지 않고 있음이 재확인됐다. 95년을 통일의 시한으로 공언해온 북측은 그 목표를 비평화적인 방법으로라도 실현하겠다는 전략에서 대남간첩공작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북권력체제의 고위인사가 장기간 남한에 잠입해 현지 지도방식으로 공작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에서 특히 가공할만하다. 이미 적발된 3개 무선간첩망과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조직책들을 총지휘한 이선실은 북한권력서열 22위로 김중인(23위)·윤기복(24위) 등 평양의 쟁쟁한 대남실력자나 부총리 김달현(32위) 보다도 높은 서열에 올라 있다. 그녀는 두차례나 남한에 침투했다가 80년초 다시 들어와 10년간 서울에서 현지 공작을 펴고 90년 10월 유유히 입북했다는 것이다.
북측은 남한을 4개 당구로 나눠 각기 조선노동당 지역당을 구축하는 한편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후보를 지원하고 93년에는 연공정부 구성까지 기도했던 것으로 발표됐다. 이런 일련의 활동은 남북대화가 계속되는 기간에 더욱 활성화됐고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발효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 2월19일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상대방체제의 상호인정(제1조),내부문제불간섭(제2조),파괴·전복행위 금지(제4조) 등을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우리 체제를 부정하고 선거에 개입하며 전복시키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써 북한은 남북합의를 명백하게 의도적으로 위반했음이 분명해졌다.
북측은 이런 명백한 사실을 무슨말로 변명하겠는가. 이제 평양당국은 남한의 내부사정과 세계의 흐름을 올바로 인식하여 테러·전복 등 낡은 방식을 청산하고 대화와 협력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모험주의적 방식을 계속하다간 남북대화도,스스로의 개방·개혁도,국제사회에의 복귀도 무산되고 말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도 스스로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특히 우리사회의 진보세력은 보다 건전한 주체의식을 가져야 하겠다. 정체불명의 외부 인물이나 자금에 의존하는 일부의 자세는 지양돼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또 중부지역당 이외의 조선노동당 지역당이 결성되어 있는지를 가려내고 숨어있는 잔당들도 적극 추적하기 바란다. 북의 합의서 위반에 대해서도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한편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합의서 이행을 촉진·강화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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