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덖음차 구례 화엄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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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근 들어 문화적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소리가 높다. 그러나 말뿐인 운동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본다. 차라리 말없이 실천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차를 아끼고, 조용히 차 생활을 즐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차 마시는 양이 부쩍 늘어난다. 우인을 불러 차를 나눠 마시며 세상이야기 하는 것도 멋이 있다. 차의 멋스러움은 차 역사를 알고 여유로움 속에서 음미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차 역사는 중국차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우롱차가 건국신화에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삼국유사』가락국기조에는 수로왕비 하씨가 천축국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머나먼 한나라로 올 때(48년) 차를 들여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이능화의『조선불교통사』에도 인도차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은 즉위시(661년) 종묘에 제사를 올리면서 차를 사용했고 통일신라 흥덕왕 3년 (828년)당나라에 갔던 김대렴이 차종자를 가져와 지금의 쌍계사 주변 지리산 자락에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긴 차 역사 중에서 한 토막을 장식하는 곳은 전남구례 화엄사차. 이곳에서는 일찍부터 선차일여라 하여 수행 중에 정신을 맑게 하고 몸의 피로를 없애거나 수마를 쫓기 위해 차를 상용해왔다. 화엄사에 거처를 정하고 사시는 스님뿐만 아니라 때때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대웅전 뒤편 대발 속에서 지리산의 신령한 기운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차나무들은 창건주 연기조사가 천축에서 가져와 심은 것이라 한다.
하동 쌍계사·해남 대흥사·나주 불회사·사천 다솔사·영광 불갑사·장성 백양사·강진 백양사 및 백련사 등과 더불어 면면히 한국차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화엄사의 덖음차는 오직 차 맛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다. 만월당에서 각황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나는 석간수를 길어다 차를 달여 마시면 더욱 좋다,. 화엄사 차 여행길에 맛볼 수 있는 별미로는 표고버섯 요리를 권할 만하다.<연호탁·관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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