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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위기" vs "진보정치 위기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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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월민주항쟁 2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 참석한 송호근(서울대).안병욱(가톨릭대).손호철(서강대).박진도(충남대).이정우(경북대).장훈(중앙대) 교수(왼쪽부터). [사진=김태성 기자]


5일 오후 5시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해 4일과 5일 열린 학술대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종합토론이 시작됐다. 참여자는 발제를 맡은 손호철 서강대 교수를 비롯해 송호근(서울대).안병욱(가톨릭대).이정우(경북대).장훈(중앙대) 교수.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이날 토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위기'였다. 한쪽에선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호소했고, 다른 한쪽에선 "진보 정치의 위기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국내 진보 학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와 '학술단체협의회'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이 토론회를 마련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vs "진보 정치의 위기일 뿐"=손호철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20년만에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며 "민주화운동이 자랑과 영광이 아니라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토론의 문을 열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날 토론의 화두였다. 과연 민주주의는 지금 위기인가. 장훈 교수는 "민주주의적 제도.규범.삶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신뢰는 넓고 깊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표현은 과장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민주주의의 한 축을 이루는 진보 정치의 위기를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손 교수는 답변을 통해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민주주의 위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좋지만 기존의 사상.결사.표현의 자유 등을 축소시키는 쪽으로 간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다"라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흐름 수용이냐 거부냐=손 교수는 민주화운동 진영이 위기에 빠진 원인으로 도덕성 측면에서 절대적 우위를 지켜내지 못한 점을 먼저 지적했다. 이어 무능과 독선.오만의 모습을 보인 점, 북한 관련 인권.반핵.평화와 같은 의제를 선점하지 못한 점,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물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을 '진보 위기'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에 대해 송호근 교수는 "이번 토론회의 발제문을 모두 일별해보니 '87년 체제의 우상화'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며 "1987년의 열망을 다시 이끌어내고 지난 20년 동안 실현 안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는 이어 "노동계급 헤게모니의 권력화를 이루고 진보 이념으로 세상을 통치해야 한다는 일종의 편견이 깔려 있다"며 "신자유주의가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는데, 세계 11~12위의 무역국가가 신자유주의를 생존의 조건으로 하지 않고 살아갈 방안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부족은 진보 진영의 최대 약점으로 거론됐다. 토론의 사회를 본 박진도 충남대 교수는 "6월민주항쟁 1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도 사회를 봤었는데, 10년 전과의 차이는 바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비교했다.

현 정부의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정보화의 물결이 높았던 시기에 집권해 불평등 심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정부를 오히려 신자유주의로 매도해선 안 된다"며 현 정부를 옹호해 눈길을 끌었다. 이 교수는 "손호철 교수의 발제는 민주주의의 성과보다 한계와 위기를 부각시키고 있다"며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개혁진보진영을 좀 더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배영대 기자<balanc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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