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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독일에서는…여성생활 현장취재(3)가정 일 효율적 양립 초점|여성평등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독일여성들의 관심사는 3K로 지칭되는 어린이(kind)·교회(kirche)·부엌(k u che)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가정이라는 한정된 테두리를 벗어나 사회와 국가, 세계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 『갈수록 더 많은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일을 병행하고 싶어합니다. 실제로 통일직전 서독쪽 기혼여성의 약45%가, 동독쪽에서는 약90%가 직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본의 프레드리히 에버트 알레가에 있는 독일 여성단체협의회 비르기트 로젠버그회장은 말한다.
오늘의 독일여성들은 3K가 아니라 취업, 어린이 양육, 낙태법등 현실적으로 그들이 당면한 문제해결과 관련된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결혼한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살며 엄마는 일하지 않는다는 종래의 상식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족은 종래의 핵가족 뿐 아니라 편모나 편부가족, 결혼하지 않고 아기를 낳아 기르는 가족등으로 그 형태가 다양해졌다.
독일에서 법으로 남녀평등이 명시된 것은 49년. 2차대전후 민주헌법을 표방한 연방독일헌법 3장은 남녀권리의 평등을 명시하고 있다. 57년에는 낙태를 일부 허용하는 등의 첫 가족관계법이 만들어 졌고 86년에는 여성에게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 변화가 있었다.
연방정부의 조직중 종전의 청소년·가족·건강부가 청소년·가족·여성·건강부로 개편되면서 효율적이고 적절한 여성정책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어 연방정부와 주정부 레벨에서 여성평등권을 펴고 옹호하기 위한 일종의 여성카운슬링 기관인 여성 평등권사무소가 전국 약4백50개소에 설치되었다.
『오늘날 독일에서의 여성정책은 일과 가정의 효율적인 양립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는 비단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성단체들의 활동도 가장 중요한 이슈가 여성취업의 확대와 정치참여입니다.』 산하에 43개의 여성단체 1천1백만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독일 여성단체협의회 로젠버그 회장의 얘기다.
그러면 왜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했어도 일을 원하는가. 최근 독일정부가 발행한 한 책자에 의하면 1백명의 기혼 직장여성이 밝힌 자신이 일을 하는 이유의 으뜸은 32%가 돈을 위해, 다음 31%는 일을 하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했다. 경제력을 갖고 독립된 인간으로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싶은 욕구때문이리라는 것이다.
86년에 개정된 새로운 결혼과 가족법은 남성과 여성의 평등과 파트너십을 기본이념으로 해 만든 것으로 아기를 낳았을 때 원하면 부부는 모두 아기양육을 위한 18개월간의 휴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즉 아기의 양육은 여성만의 소관사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식이다.
80년대에 들어와 독일에서의 여성들 취업이 크게 일반화 하면서 정치 및 사회활동 참여도 눈부시게 활발해졌다. 한예로 76년 사민당의 여성당원비율은 11·9%였으나 88년에는 25·6%가 되었다. 같은 기간동안 기민당의 경우는 18·5%가 22·5%로 증가했다. 특히 사민당이 88년8월 당내의 모든 직책에서 특정한 성이 최소한 40%는 되어야 한다(성별 미니멈 퀘타제)고 정한 것은 오늘날 독일에서 정치사회 등 각분야에서 여성들의 참여를 촉진하는데 크게 역할을 했다는 것이 「여성없이는 정부가 잘 될 수 없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진보적인 사민당 여성위원회 바바라 스티글러 박사의 자랑스런 설명이다.
실제로 독일 연방의회에서의 여성비율은 49년 7·1%였던 것이 87년에는 15%, 92년 현재는 약25%에 이른다. 연방정부 여성장관도 4명이나 된다. 독일 전역에서 80년부터 88년사이 전 노조원의 숫자는 1·3%가 줄었는데 여성 노조원의 숫자는 오히려 3·2%가 늘어 지난 4월 전국적인 파업을 주도한 공공노조의 모니카 볼프위원장이 여성일 정도로 노조에서의 여성 역할이 크게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의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매일의 생활에서 남녀평등이 완전히 이루어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이 독일 여성관계자들 모두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특히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집안 일을 하는 것은 주부가 직업을 가진 것과 크게 관계없이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은 좀체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성취업에 이어 또 하나 통일후 독일 여성계의 핫이슈로 등장한 것이 옛동독 지역의 여성문제. 통일후 옛 동독지역의 많은 직장이 문을 닫는 등으로 하여 여성들의 실업률이 일반실업률 약50%를 훨씬 웃도는 약62%로 추산되는가하면 통일후 가치관의 혼란등으로 이혼율이 크게 증가하는 등 각종 쇼크를 가장 많이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때문이다. 【본=박금옥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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