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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안하며 「이눈치」 몸사리며 「저눈치」(국정표류 이대로좋은가: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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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나라일 누가하나/“대통령 결정해도 안되는데”…/고위공무원 줄대기 더 바빠
대통령의 민자당탈당과 그에 따른 당정관계의 변모,갑작스런 중립화선언은 공직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변혁의 명분과 목적이 어떻게 정착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나타나고 있는 혼란상을 보면 국정은 도대체 누가 집행하는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정부와 민자당은 중소기업지원대책 당정회의를 최근 취소했다. 이로 인해 관련부처는 중소기업 지원업무의 일손을 사실상 놓고 있다. 또 국회의 장기공전으로 종합유선방송법 개정안·개인정보 보호법안이 처리되지 않아 공보처는 프로그램 공급업자 선정을 못하고 있다. 부처마다 이같은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당정관계가 표류하고 국회가 공전하는 바람에 움치고 뛸 재주가 없다.
특히 이동통신 사태이후 행정부내에는 『정부의 결정이 최종절차』라는 권위와 관례가 깨져버려 소극주의와 몸사리기가 급속히 확산되어 가고 있다. 대통령이 결정해도 안되는 판에 공연히 사명감을 가져봐야 피곤하고 몸만 상할테니 태풍(정권교체기)이나 피해놓고 보자는 식이다.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은 『서류는 서랍에서 잠자고 국장급이상 고위공직자들은 사실상 놀고 있다』고 자탄한다. 찬반이 대립하는 사안의 과감한 정책추진은 아예 포기하거나 뒷전으로 미루고 대통령 후보와 그 측근에 새로 줄대기 경쟁이 고위직간에 치열하다.
기강해이에 따른 국가기밀의 사사로운 유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민주·국민당의 국감자료요구 실태를 보면 주요 정책 추진정보가 이미 야당의 수중에까지 상당히 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뒤늦게 사정기관이 특감반을 파견하고 공직자 동향점검을 하고 있지만 겁내는 사람도 별로 없고 사정의 태도도 예전같이 진지하고 엄정한 것같지 않다는 것이 공무원 사회의 여론이다. 특히 내무공무원들 사이엔 한준수 전 군수 사건이후 『시키는 대로 잘못 했다간 내 목만 달아난다』는 자조와 보신분위기가 확연하며 내무장관 경질이 기정사실화되자 일상적인 업무처리 외에는 거의 일손을 놓고 있다.
무한경쟁의 대선전,정치권의 당리당략앞에 공직자들마저 숨죽이고 있거나 갈팡질팡한다면 국정은 누가 챙길 것인가.<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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