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글 심는' 토지문화관 창작실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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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소설가 박경리씨가 운영하는 강원도 원주시 오봉산 자락 토지문화관(www.tojicul.or.kr) 안에 자리잡은 무료 창작실이 작가들에게 갈수록 인기다. 23일 토지문화관에 따르면 소설가 박완서.박범신.조용호씨와 시인 이제하.김승희씨 등이 내년 창작실 입주를 예약했다. 또 10여명의 작가가 내년 입주 신청을 마친 상태다. 토지문화관이 2001년 하반기부터 운영하는 무료 창작실은 매년 2월 사용 신청을 받아 3월부터 입주를 시작한다. 한 작가가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은 세달에서 넉달까지다.

명지대에서 강의하는 박범신씨는 지난 여름 사용하기를 희망했는데 이미 여름 방학 기간 중 이용하겠다는 희망자가 줄을 서 이번 겨울로 사용기간을 옮긴 경우다.

토지문화관은 한번 입주가 '좌절된' 박씨를 남들처럼 줄세울 수 없어 내년 1월 입주를 허용했다. 입주가 확정된 다른 작가들 역시 가급적 젊은 작가들에게 창작실을 개방하자는 기존 방침에서 중견 작가들을 배려하자는 쪽으로 운영방침을 바꾼 덕을 봤다. 한달에 한번 꼴로 박경리씨를 찾을 정도로 사이가 각별한 박완서씨는 내년 입주가 두번째다.

무료창작실이 작가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대략 세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먼저 작품을 쓰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더할나위 없는 창작 환경을 꼽을 수 있다.

토지문화관이 자리잡고 있는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는 인근에 연세대 원주캠퍼스가 있기는 하지만 창작실에서 한참을 걸어나가야 변변한 식당이 나올 정도로 외진 곳이다.

서울에서 두시간 거리로 '지나치게 멀지 않은'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박경리씨가 자택 앞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무공해 채소들이 반찬으로 오르는 식사와 깔끔한 집필실이 무료로 제공된다는 점도 무시못할 매력이다. 지난 10월 문을 연 새 창작실은 전형적인 전원주택 풍이다.

박범신씨는 "10년간 사용했던 경기도 용인의 한터산방을 지난해 처분한 후 집필실이 마땅치 않던 차에 토지문화관 창작실을 다녀온 젊은 작가들에게서 시설도 훌륭하고 분위기도 괜찮다는 말을 들어서 사용 신청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여름 방학 기간 중 강원도 평창의 외딴 집을 빌려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너무 먼 데다 겨울에 사용할 생각을 하니 불을 직접 때야 하는 것은 물론 눈이라도 내리면 오도가도 못하고 길이 막힐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토지문화관은 평생 외로운 길을 걸어온 대작가의 그늘이랄까, 박경리 선생 문학의 터 같은 곳 아니냐"고 덧붙였다.

10월 새 창작실이 문을 열어 토지문화관 창작실은 모두 18개의 방을 갖추게 됐다.

토지문화관은 자체 운영 비용 마련을 위한 대관용 등을 제외하고 월 평균 10명 정도의 작가들에게 창작실을 개방한다. 때문에 매년 20~25명의 작가가 창작실을 사용할 수 있다. 창작실의 운영 비용은 문화관광부 전업문인 창작실 지원 기금과 토지문화재단 자체 예산 등으로 충당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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