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二心異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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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14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함께 절정을 느끼며 하나 되는 기분을 갖고 싶은데…. 우리 부부는 그게 쉽지 않고, 자꾸 엇박자가 나요. 속궁합이 안 맞는 건지….”
M씨 부부는 야한 영화를 함께 본 뒤 묘한 불만에 사로잡혔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야동’(야한 동영상)이든, 예술적 에로영화든 우리의 성생활을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성교육이 부실하다 보니 이런 영상물을 통해 성을 배우려 하고 영화 속 가공현실과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네 탓 내 탓’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서로 사랑하고 성격도 잘 맞으니 성행위 때도 두 사람이 동시에 절정에 올라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완벽주의다. 남녀가 극치감에 함께 도달하는 ‘동시성 오르가슴’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도 수많은 영화ㆍ소설ㆍ잡지 등이 이런 환상을 조장해 왔다.
남성들은 삽입 성행위 때 사정하면서 대체로 오르가슴을 느끼지만, 여성은 그렇지 못하다. 학술 통계를 보면 성행위에서 거의 매번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은 3분의 1 이하다. 대다수의 부부가 매번 함께 느끼지는 않는다. 물론 남편이 조루가 있거나 아내가 불감증이 있는 경우라면 성적 만족도는 떨어진다. 하지만 아무런 성기능 장애가 없어도 각자 오르가슴을 느끼는 데는 얼마든지 시간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오늘 100점이 아니라고 해서 상대의 무능함을 탓하거나 나 자신의 결함이라고 자책하며 고개를 떨어뜨린다.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부부는 일심동체라는데 왜 저 사람과는 맞지 않을까’ 하는 오해와 갈등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기 위해 서로 맞추려고 노력하는 이심이체(二心異體)’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애초에 우리 부부는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조율해 나가며 2인3각 경기를 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부부사이다.

대부분의 커플은 한두 번의 섹스만으로 소위 속궁합이 잘 맞는 상대인지를 섣불리 판단하고 헤어지기도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와 성적으로 맞는 상대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맞춰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속궁합만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만족스러운 성생활은 두 사람이 상대의 흥분반응을 점점 이해하고 읽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 성감대와 체위, 분위기와 그날의 기분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서로의 성적 만족을 찾아가는 ‘상호작용 놀이(interactive play)’가 바로 성이다. 남녀 어느 한쪽이 목석처럼 누워서 나를 만족시켜 보라는 식의 수동성은 당장 버려야 한다.

일반적인 성적 불일치는 부부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다. 처음부터 저택에다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시작하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평수를 늘려가며 하나씩 채워나가는 즐거움은 부부의 성생활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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