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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원초적 호기심 … 지독한 무지 … 혐오와 금기의 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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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버자이너 문화사

옐토 드렌스 지음, 김명남 옮김, 동아시아, 485쪽, 2만2000원

여성의 성기에 대해 인류는 극도로 모순되는 생각과 태도를 보여왔다. 강렬한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막상 그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는 놀랄 정도로 무지했다. 숭배와 찬양의 대상인가 하면 혐오와 금기.공포의 바탕이기도 했다.

여성 성기에 대한 오해와 야만적인 학대는 현재진행형이다. 적도 위쪽 아프리카에서는 모로코.알제리 등 일부 서구화된 나라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클리토리스를 잘라내는 관습이 성행한다. 소말리아와 수단에서는 클리토리스와 소음순을 몽땅 잘라낸 뒤 조그만 구멍만 남겨놓고 대음순마저 꿰매 버린다. 그런데도 케냐의 지도자 조모 케나타는 1939년 발표한 논문에서 "소녀 할례는 우리에게는 신제국주의적 간섭의 압박을 해소하는 배출구"라고 강변했다. 유럽도 뻐길 것은 없다. 19세기 중반 런던의사협회 회장을 지낸 산부인과 의사 아이작 베이커 브라운은 열렬한 클리토리스 절제 옹호자였다.

여성 성기는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플라톤은 자궁이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작은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동물은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데, 적절한 시점이 지나도록 아무 소득이 없으면 화가 나 몸 전체를 마구 쑤시고 다닌다는 것이다. 1920년 미국 아이다호 주에서 한 전도사는 설교하기 전에 여성들에게 다리를 꼬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좋습니다, 형제들이여. 이제 지옥의 문이 닫혔으니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성을 '어두운 대륙'이라고 불렀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세상의 모든 악과 질병이 나왔다는데, 독일어.프랑스어.네덜란드어에서 '상자'는 여성의 질을 가리키는 속어이기도 하다. 2차대전 후 독일에 주둔한 미군들은 독일 창녀들의 질 안에 면도칼이 들어있다는 소문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다. 월경에 대한 오해도 무척 많다.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월경 중인 여성은 포도주가 발효되는 포도주 창고에 들어갈 수 없다. 이들은 여성의 월경 탓에 우유가 쉬고 마요네즈가 굳는다고 믿는다.

무수한 오해는 역시 여성보다는 남성의 편견과 위선 탓이 크다.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행동'을 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4년 고등학교의 '완전한 금욕' 교육을 위해 40만달러의 예산을 편성하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의사이자 성과학자.심리학자인 저자는 여성이 자신의 성기를 이해하고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해놓았다. 여성 독자라면 저자의 안내에 따라 자기 몸을 관찰.접촉하고 느껴보는 용기도 내봄직하다. 성기의 구조, 성욕, 오르가즘, 처녀막 신화, 임신과 출산.수유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룬 저자의 깊고도 풍부한 지식이 놀랍다.

예를 들어 요즘 '은밀한 가정용 기구'로 취급받는 바이브레이터는 1880년 경 처음 등장했을 때는 엄연한 의료기구였다고 한다. 최초의 가정용 바이브레이터는 '바이브라틸'이라는 이름으로 1899년 출시됐다. 이 제품의 효과(?)를 에둘러 표현한 광고문구가 재미있다. '여성들에게 건강과 아름다움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부드럽고 차분하고 활력있고 상쾌한 기분을 줍니다. 여성이 원하는 것을 잘 아는 여성이 발명했습니다. 자연은 생명과 함께 떨리고 진동하는 것입니다. 가장 완벽한 여성은 그 피가 자연적 존재의 법칙에 맞춰 떨리는 여성입니다.'

1996년 영국의 한 보험사가 '외계 생명체에 의한 임신'에 대비하는 보험을 내놓자 일주일 만에 300명이나 가입했다는 일화도 있다. 신이 난 보험사는 다시 '하느님에 의한 처녀 잉태'로 보장 범위를 넓혔다나.

이 책 네덜란드어 원본을 영어로 번역한 책 '세상의 기원(The Origin of the World)'을 옮긴 것이다. 남성인 지은이는 외설스러운 사람으로 오해받을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역자는 후기에서 "여성인 내가 읽기에 마음에 걸린 부분이 없었다"며 저자의 불안을 달래주었다.

어쨌거나 출판사가 원제를 버리고 흥행에 성공한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연상케 하는 '버자이너(질)'라는 단어를 굳이 제목에 넣은 자체가 여성 성기의 모순된 힘(?)에 기대려는 의도 아니었을까.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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