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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제언〉폐해 많은 「반상회」없애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제국이 패망의 길을 가고 있을 무렵 국민 총동원연맹이란 이름으로 일제말엽까지「인상회(도나리 조카이)」란 것을 조직하여 우리국민의 놋그릇·쌀 공출·고철헌납, 심지어 창문의 창살까지 강제로 빼앗아 갔고 여자 정신대도 이 조직에서 차출해 한때 정신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열살도 되지 않은 여자아이를 결혼시키는 억울하고 불쌍한 고초를 겪었었다.
유신독재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을 단속하고 마음대로 이용, 독재의 초석으로 일제의 「인상회」가 좋다고 착안하여 안보를 내세우고 일제때 잔재를 그대로 모방해 「반상회」를전국에 조직하도록 한 것이다.
「상회」란 말은 우리나라말이 아니고 일본말인 것을 우리나라 국민은 과연 얼마나 아는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히 짓밟는 야간통행금지는 폐지되었는데 아직까지도 반상회는 남아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반상회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웃간에 서로 알고 친해질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과연 민주화를 추구하고 우리들에게 이웃과의 친목도모가 반강제적인 틀 속에서 정기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가.
이제 남북협상과 교류도 발전되고 있는 시점에서 통·반장, 반상회 조직을 폐지하고 참된 민주화를 할 때라 생각한다.
한때 『오늘은반상회의 날입니다』라고 TV에 방송하고, TV에 정부관계자가 나와 정부정책을 홍보하고 조직을 다지고, 선거때면 비밀리에 통·반장의 주도로 뇌물·향응공세를 했던 것 또한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부녀자가 반장인 곳은 불참석자에게 「벌금」이라 이름하여 1회에 1천∼2천원씩 받는 것이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서울에서는 요즘 반상회가 어느 정도 유명무실해 졌다고 하나 반장들은「벌금」을 받기 위한 반상회로 인식되어 있다고 본다.
반장들의 횡포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러한 벌금이란 명목은 용무가 있어 불참해도, 생계 때문에 불참해도 무조건 걷고 있다.
통·반장이 되는 것이 큰 권한이나 되는 것처럼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살고있는 대전은 '93EXPO때문에 거리 미관을 살린다는 이유로 대로변 아파트는 베란다에 꽃을 내놓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자발적 참여 유도도 없이 강제적으로 꽃을 팔기까지 했다. 꽃은 1년초로 정작 93년에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조화를 가구당 1만5백∼2만1천원씩 관리비에서 일괄 징수하여 강매하였는데 이것 또한 내년에는 햇빛에 바래 더욱 미관을 해치는 꼴불견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예는 관할구청 또는 시의 지시에 따라 통·반장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홍보를 하고 국민의 의견을 듣는다. 홍보지 배포를 반장이 있으면 용의하다는 이유를 들어 반상회를 활성화시키고 있지만 공무원을 증원해서 부족한 인력을 충당해 동 직원이 직접 배포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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