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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공사 사장 ″한국 알리기〃민간외교 선봉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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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다가오는 93년과 94년은 한국관광의 전기를 맞는 해. 산업올림픽인 93대전엑스포와 관광올림픽인 94 PATA( 태평양아시아관광협회 ) 총회와 한국방문의 해를 맞기도 하지만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관광부문을 흑자로 발전시킬 절호의 기회로 여겨지기 때문.
그러나 한국관광은 관광수지적자가 지난해말로 3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깊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있는 실정. 올해에도 적자폭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추세다. 서울올림픽이후 줄곧 흑자기류를 탔던 관광업계로서는 당혹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관광부문이 이처럼 주눅이 들면서 최근 부쩍 눈총을 받고있는 곳은 한국관광공사. 정부부처가 아니면서도 국내외적으로는 정부부처역할을 하고있고 정부공사업체로는 보기 드물게 영업·개발·교육·진흥·홍보 등 종합기능을 갖춘 곳이 관광공사다. 따라서 한국관광의 총수로 첫손에 꼽히는 관광공사사장은 당연히 장관급으로 치부된다. 실제로 지난62년 관광공사가 설립된 이후 30년 동안 16대를 거쳐간 10명의 공사사장들 대부분이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거쳤고 정부와 사회의 수요요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현직을 떠난 뒤에도 대부분 비중 있는 자리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국관광 틀 마련>
제3공화국 출범직후 정부와 공공기관이 운영하던 관광사업체를 인수, 경영을 흑자로 전환시키고 새로운 재투자를 시도하기 위해 처음엔 「국제관광공사」로 설립된 관광공사 초대총재 신두영씨( 작고 )는 지금의 총무처 전신인 차관급 국무원사무국장과 사무처차장을 지낸 뛰어난 행정가. 약1년간의 짧은 재임기간 중에도 워커힐호텔을 개관했고 대한여행사를 흡수하는 등 한국관광의 초석을 다진 뒤 장관급인 대통령사정담당특별보좌관과 부총리 상위직급인 감사원장을 지냈다.
2대 이원우 총재(작고)는 경희대교수를 지낸 학사출신으로 공보부장관을 역임한 케이스. 뛰어난 국제감각을 지닌 그는 당시 최고급호텔인 반도호텔과 조선호텔을 인수했으며 PATA에 가입하는 등 국제적인 문호를 열었다. 7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75년 경희대교수로 복직한 뒤에도 보이스카우트연맹총재와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참가하는 등 민간외교의 선봉역 을 계속했다.
한국관광의 태동기였던 60년대엔 관광공사도 재원부족에 허덕였던 상태 . 이 총재는 부임직후부터 직원봉급마련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녀야 했고 은행차입금으로 그 달 그 달을 간신히 넘기는 곤혹을 겪기도 했다. 당시엔 일본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전이었던 시기라 마음대로 일식 점 하나 개업하기 어려웠던 시절. 반도호텔 인수 후 일본관광객 유치를 위해 일식 점을 개설하자 『왜놈 식당이 웬 말이냐』며 당장 소란이 일었었다는 에피소드가 남아있다.
일본 릿쿄 (입교) 대학 경제학부 출신으로 대한여행사 이사장과 문공부장관을 거친3대 오재경 총재 (73) 는 관광사업적인 두뇌회전도 빨랐던 인물. 기존7개 지방호텔에다 울산호텔을 인수하는 한편 반도조선아케이드를 개관해 관광공사의 흑자시대를 열었다. 65년 제l4차 PATA총회를 서울에 유치, 민간외교에도 성공했으며 뛰어난 회계적·사업적 감각으로 일본교통 공사와 여행알선 쌍무 협정을 체결하고 주월미군 휴가장병 유치사업 등을 펼쳤다. 오 총 재는 이후 YMCA이사와 국제로터리클럽375지구총재를 거쳐 동아일보사장을 지냈다.
공군참모총장 (중장예편 )출신으로 비행시간이 무려6천시간을 초과했던 6대 장성환 총재(72) 는 차분하고 깔끔한 일 처리 솜씨를 보였던 인물. 태국대사와 대한항공사장을 역임했던 그는 불과 10개월에 걸친 재임기간 중에도 화재로 소실됐던 반도아케이드를 복구했다. 교통부장관으로 전격 발탁돼 이임한 뒤 디자인포장센터이사장·무역진흥공사사상을 지냈다.

<「독직」으로 하차>
국회의원을 거처 취임한 7대 안동준 총재 (73) 는 당시 영리사업체의 민영화와 함께 관광진흥사업 등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전환기에서 독직사건에 휘말려 도중하차한 케이스. 양주를 시판하고 외제차량거래소를 설치했다. 샌프란시스코와 홍콩선전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해외선전활동을 강화하기도 했다. 수뢰혐의로 구속됐었으나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난 뒤 충주에 미덕중학교와 충주상고를 개설, 사학운영에 손을 댔고 노장마라톤협회장과 국회의원동우회 상근부회장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총재에서 사장체제로 바뀐 뒤 초임인 9, 10대 김좌겸 사장 (작고) 은 주월 대사관공사와 자카르타총영사·인도네시아대사 등 오랜 외교관생활을 바탕으로 대외관계에서 탁월한 업적을 보여준 인물. 만6년에 걸친 최 장수 총재답게 관광공사를 영업체제에서 진흥홍보체제로 전환시켰다. 79년엔 제28차 PATA총회를 유치, 성공적으로 개최해 한국관광이 도약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았다. 자회사로 경주개발공사를 설립했고 설악단지개발에 착수했으며 현 경주관광교육원의 전산인 경주호텔학교를 개교했다. 무임소장관으로 발탁됐으나 재임 중 작고했다.
11대 황인성 사장( 66)은 육군경리감출신 (소장예편 )으로 치밀한 행정력을 바탕으로 빈틈없이 추진하는 인물. 국무총리비서실장을 거쳐 전북지사와 교통부장관을 역임한 전직경력도 화려하지만 이임 후에도 농수산부장관과 아시아나항공 사장·국회의원·민자당정책위의장 등 활약이 두드러진 편이다. 재임 중에는 제주관광개발공사를 설립해 중문단지 개발을 강력히 추진했으며 일본과 대만·유럽 등지에 관광유치단을 최초로 파견하는 등 관광유치사업에 크게 노력했다.
국무총리비서관과 국회의원을 거처 12, 13대를 연임한 하대돈 사장 (57)은 83년 제53차 미주여행업협회(ASTA) 총회를 서울에 유치했고 지금의 중구다동 사옥을 마련한 공로자. 해외선전사무소를 지사체제로 바꾸고 한국관광상 시상제도를 처음 채택했다. 교통부에서 실시하던 관광종사원 자격전형과 자격증 교부업무를 넘겨받아 실시했다. 이임 뒤에는 체육계와 인연을 맺고 서울올림픽조직위원과 아시아경기조직위 등에서 활동했다.
사실상 유일한 언론계출신으로 한국방송공사 해설위원장에서 전격 발탁된 14대 이계익 사장(55)은 당시「5분 경제해설」등 탁월한 논평에 비해 업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임 중 서울올림픽관광기획단을 발족했고 제26차 동아시아지역관광협회(EATA)총회를 유치했나 이 사장은 최근 다시 방송계로 복귀, SBS와 KBS등에서 해설위원으로 활 약하고 있다.
해군제독 (소장예편)출신으로 국무총리비서실장과 전매청장을 역임한 현임 15, 16대 조영길 사장 (59) 은 네 번째 연임사장으로 영어와 일어·프탕스어 등 3개 국어를 구사하는 등 관광총수로서는 적임자로 평가받는 인물. 94 PATA총회를 유치했고 호남권종합관광단지개발을 위해 자회사 서남관광개발공사를 설립했다. 적자경영을 계속해온 산정호수가족호텔과 금오산 관광호텔 등을 정리했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지사와 모스크바지사 등 북방외교의 민간교두보를 개설했다. 93대전엑스포·94PATA총회와 한국방문의 해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앞두고 최근 관광수지적자에 직면해 있는 그에게는 이 행사들의 성공여부와 관광수지흑자반전이 향후 도약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배유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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