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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한 수사와 사후처리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관권선거 개입을 폭로한 전군수의 2차 폭로와 그에 대한 강제구인을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다. 그의 2차 폭로에 따르면 지난 총선때 충남도와 연기군에서는 각기 이른바 「대책회의」가 운영돼 지방행정기관장과 현지 검·경·안기부·기무사 등의 책임자가 여당후보지원책을 논의·실행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거에 엄정중립을 지키고 부정을 감시해야 할 입장에 있는 현지의 국가공권력이 조직적으로 여당후보를 지원했다는 얘기다. 이런 그의 주장은 앞으로 수사를 통해 상세한 내용이 밝혀져야 겠지만 여러 정황과 우리 짐작으로는 대부분 사실임이 분명하다.
도대체 민주화를 간판으로 내걸고 그것을 가장 큰 업적으로 내세우는 이 정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자행될 수 있었는가. 충남도와 연기군에서 그랬다면 다른 도나 시·군에서도 이런 일이 없었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중앙차원에서도 역시 「대책회의」가 운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대책회의」의 존재는 전국적으로 관권이 여당후보를 지원했을 가능성을 의미하고 당선된 민자당 의원들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국은 이제부터 대책회의의 실체와 구체적 운영방식,선거개입의 실태를 철저히 수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수사의 내용에 따라 관련자에 대한 사법처리와 징계·해임 등 행정적 조치는 물론 정치적 책임도 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대로 이제 우리나라도 민주화도정에 들어섰다고 믿어온 많은 국민에게 관권의 이런 조직적 선거개입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으며 정부는 책임을 통감해야 마땅하다.
전군수에게 아직 더 폭로할 자료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그를 구인해 본격적 수사가 진행중인 만큼 남은 일은 진상을 명백히 규명하는 일과 규명된 진상을 바탕으로 사법처리,정치·행정적 책임추궁,제도개선 등을 단행하는 일이다.
전군수 역시 야당당사에 숨어 출두를 회피하면서 「폭로」라는 형식으로 주장만 하기보다는 이제 검찰수사를 받게된 만큼 당당하고 정직하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전군수가 출두에 조건을 붙이고 야당행사에 들러리를 서는 행태에 대해서는 내심 불쾌하게 생각했으며,끝내 경찰과 야당간에 충돌까지 빚으면서 강제 구인되는 결과를 보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검찰에 대한 불신감도 작용했겠지만 수사에 응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경위야 어찌됐든 야당당사에 공권력이 투입된 것은 불행한 일이며,쌍방간에 얼마든지 순리로 할 수 있는 일을 국민앞에 충돌까지 보이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여당으로서는 유구무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공정선거를 위한 제도 강화니,수사에 한계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으나 이제 와 별로 귀담아 들을 기분도 아니다. 정부·여당이 할 일은 엄정한 수사와 그에 따른 엄정한 사후처리다. 벌써 당국이 축소수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의 눈길이 쏠리고 있는 만큼 이 최악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잔꾀를 부릴 생각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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