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도피 풍조와 사법공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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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회에 꽤 이름깨나 알려져 있던 인사들의 해외도피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두달 사이에만 해도 명문 중동학원 재단이사장 부부,청주 운호학원이사장,모영화감독이 부도를 내거나 사기를 하고는 미국으로 도피해 물의를 일으켰었다. 그런데 이번엔 서울시경국장과 치안본부장을 지낸 손달용씨가 역시 거액의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도피해 버린 것이다.
미국이 마치 우리 범법자들의 도피처가 되어버린 그런 느낌이다. 지난해에는 모대학 총장이 부정입학이 탄로날 지경에 이르자 미국으로 달아났다가 올해에야 귀국한바 있다.
평소엔 그렇게 권세를 자랑하고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다가 불법을 저지르고는 해외로 도피나 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일반 국민들은 어떤느낌을 받을 것인가. 이러고도 사회에 도덕이 살아 숨쉬고 법질서가 지켜지길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암담한 느낌이다.
되풀이 하는 소리지만 이른바 권세있고 이름있다는 사람들의 도덕적 각성과 모범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 그들부터가 도덕적 모범을 보이고 법을 어겼을 때는 법에 따른 처벌을 감수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한 이 사회에 도덕과 법질서가 바로 설 수 없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최근 정부가 각국과 범죄인 인도 및 형사법 공조조약의 체결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것은 잘 하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인권과 법적 정의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나라로 평가되어 외국으로부터 조약체결을 기피당해 왔다. 또 국내법상으로도 그러한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법적체계도 완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88년에 「범죄인 인도법」,91년에 「국제형사사법공조법」을 제정함으로써 국내법의 체제를 갖췄고 민주화의 진전으로 국제적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해 이제는 외국으로부터의 호응도 받을 수 있게된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범죄인 인도조약은 1개국과 체결,5개국과 정식서명 예정에 있고,「형사사법공조조약」의 경우는 호주와 곧 서명할 예정이고 캐나다와 2일,미국과는 4일 가서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조약을 더욱 더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내외 인권상황이 더 개선되어야 하고 중벌위주로 된 국내 형법내용도 국제적 조류에 맞게 합리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정부는 그러한 내부적 과제의 과감한 해결을 통해 범죄에 대한 국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범죄자에겐 어느 나라도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힘있고 돈있는 사람은 범법을 하고서도 해외로 달아나 여전히 여보란듯이 산다면 누가 법을 지키려할 것인가. 「한국병」의 뿌리는 힘있는 자들의 부정부패와 탈법이다. 국제적 사법공조는 그 한국병의 치유책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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