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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국민 스포츠 1위는 '걷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일 뇌이 플래장스 걷기행사에 참가한 RIF 회원들이 출발에 앞서 몸을 풀고 있다.

프랑스 파리 근교 뇌이 플래장스의 숲길 입구. 일요일인 20일 오전 10시, 상쾌한 아침 공기가 코 끝을 간지는 가운데 70여 명의 ‘일드 프랑스 랑도뇌’(RIF:Randoneurs d‘ile de France) 회원이 모여 몸을 풀고 있다. 엄마ㆍ아빠 손을 잡고 나온 꼬마들부터 노년층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회원들은 ‘출발’ 소리가 나자 일제히 “와”하고 소리를 지르곤 함께 걷기 시작했다.

30여 분을 열심히 걷던 일행은 자연스럽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만큼 잰걸음으로 걷는 20여 명이 선두 그룹을 이뤘다. 이들은 경보 경기를 하듯 걸음이 빨랐다. 나머지 50여 명은 시속 4㎞ 정도로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어린이를 데리고 나온 30대와 힘이 다소 딸려 보이는 50대 여성 회원들이 두 번째 그룹의 주류를 이뤘다.

회원들은 리더의 인도에 따라 빠르게 걷다, 천천히 걷다를 반복했다. 큰 나무 숲길을 지날 때는 “심호흡하세요”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다리를 지나갈 때는 “강 구경 좀 하면서 천천히 걸어요”하는 얘기도 나왔다. 낮 12시30분쯤 회원 모두가 골인 지점인 아브롱 언덕에 도착했다. 참가자들은 손뼉을 치고 서로 등을 두드리며 격려를 했다.

가져온 샌드위치 등으로 가볍게 점심을 한 회원들은 RER(교외전철)을 타고 파리로 돌아갔다. 이 날 걷기행사에 참여한 회원 르네(40ㆍ여)는 아브롱 언덕의 꼭대기에 오른 뒤 “언덕길이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을 두어 시간 걷고 나니 온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프랑스 제1의 국민 스포츠인 랑도네=프랑스에선 ‘걷기’가 당당히 인기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랑도네 협회(FFRP)에 따르면 이 나라의 걷기 인구는 1500만 명에 이른다. 운동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사람 세 명 중 한 명 꼴이다. 지난해 일간 르피가로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최고 인기 참여 스포츠로 각광을 받던 사이클과 테니스 등을 제치고 걷기가 2005년부터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걷기 동호회는 전국에 2만5000여 개나 있다. 협회에 등록되지않은 소규모 모임까지 합치면 동호회 숫자와 실제 걷기를 즐기는 인구는 더 많을 것이라는 게 협회 측의 설명이다.

프랑스어로 ‘랑도네(randonee)’로 불리는 걷기는 이 나라에선 주로 강변이나 산길 등 자연과 함께한다는 게 특징이다. 이를 즐기는 사람을 랑도뇌(randoneurs)’라고 한다. 더러는 높은 산이나 사막을 횡단하는 랑도네도 있지만 보통 집에서 멀지않은 자연에 나가 한나절 열심히 걷는 것이다. 알프스ㆍ피레네 산맥 인근을 제외하곤 대체로 산이 드문 지형이어서 우리나라에서 등산하는 것처럼 자연 속을 걷는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걷기 열풍이 부는 이유는 무엇보다 별 준비 없이도 간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FFRP 사무국의 카발레이로는 “비용이나 시간 부담없이 운동할 수 있고 무엇보다 도시인들에게 자연이라는 메리트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걷기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숲이나 호수가 걷기를 비롯, 1박2일 코스로 몽블랑 산악지대를 걷는 산악 랑도네, 역사 전문가를 대동하고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는 유적 랑도네, 식물 탐구 랑도네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개인전 단체전 등을 포함하는 대규모 대회만도 해마다 수십여 개가 열린다.

◇각종 성인병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걷기는 특히 파리 등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스포츠다. 운동 부족을 해결하고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주기 때문이다. 프랑스 랑도네 협회 소속 의사 소피 뒤므레는 “걷기는 한 장소에서 오래 근무하는 사무직 직원들에게 특히 좋은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뼈와 근육 발달은 물론,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적”이라면서 “녹색의 자연 속에서 좋은 공기를 실컷 마실 수 있어 스트레스 해소 등 정신 건강에도 좋은 스포츠”라고 강조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allon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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