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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느긋한 주말 ‘아점’, 브런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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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28면

‘브런치’의 대표 음식으로 꼽히는 ‘에그 인 토스트’. 브런치는 대개 계란이 들어가는 요리가 많다.

재작년에 오래된 친구가 뉴욕으로 놀러 왔다. 당시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던 중이라 매일 함께 지내지는 못했지만 쉬는 날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좋아하는 곳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서도 ‘브런치’ 를 함께 먹으러 간 일이 0순위였다. 좋은 것만 보여 주고 먹여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대체 어딜 갈까 한참 고민했다. 결론은 ‘내가 하던 대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내가 즐겨 가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더 멋지고 신기한 메뉴를 하는 곳도 많지만, 브런치는 주말 정오 즈음에 편한 곳에 가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할 나위 없이 느긋하게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뉴욕에서 처음으로 브런치를 먹게 될 친구에게도 그런 느낌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은은한 커피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미리 와서 일요일을 막 즐기기 시작한 사람들의 즐거운 대화가 음악처럼 들린다. 편한 옷차림을 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테이블 위에는 커피잔이나 주스잔, 팬케이크, 에그 베네딕트(잉글리시 머핀 사이에 구운 햄을 넣고 그 위에 일종의 수란을 얹어 홀랜다이즈 소스와 함께 먹는 음식) 등 친숙한 브런치 메뉴가 놓여 있다.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손짓까지 더해 얘기를 하느라 무척 분주한 느낌이었다.

커피와 오믈렛ㆍ팬케이크를 주문한 후 주위를 둘러보던 친구가 한국에도 지금 브런치 열풍이 불고 있다는 말을 했다. 예약을 안 하고 가면 자리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인기만발이라나. 뷔페식 메뉴가 많이 등장했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브런치의 미덕이라 할 가볍고 편안한 느낌보다는 기분전환을 위한, 조금은 특별한 어떤 이벤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귀국 후 몇 곳의 브런치 전문점에 가보니 그때 친구가 했던 말이 실감났다. 아직 모든 곳을 다 다녀 보지 못해 선뜻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어느 곳에서건 다소 ‘거한 느낌’을 받는 중이다. 어떤 문화건 다른 나라로 가면 그 나라의 실정에 맞게 변형되게 마련이듯 한국에서의 브런치도 그렇게 조금은 변화된 모습을 띠게 된 것 같다.

가벼움과 한가로움이 브런치의 미덕
브런치는 말 그대로 ‘Breakfast+Lunch=Brunch’로서 아침 겸 점심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아점이라고 부르면 적당할 듯하다. 미국에서 발생한 식문화로 일요일 정오 무렵, 즉 11시부터 3시 사이에 식구들이나 친구ㆍ연인이 모여 한가하게 즐기는 식사의 한 형태다. 미국의 경우 한국과는 달리 ‘뷔페식 브런치’를 접하기 힘들다. 보통 단품 메뉴 위주인 소박한 브런치 가게들이 대부분이다. 가격도 저렴한 메뉴들을 팔아서인지 인테리어도 포근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로 테이블도 몇 개 안 되는 곳이 많다.

메뉴는 대개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먹는 메뉴의 혼합 형태. 시리얼, 스크램블하거나 프라이한 계란과 베이컨, 과일이나 야채 샐러드, 잼이나 메이플 시럽을 곁들인 팬케이크, 생과일 주스, 커피와 차가 기본이다. 거기에 키시(파이류지만 달지 않아 식사용으로 주로 먹는다), 파이나 훈제된 연어, 차갑게 서빙 되는 고기류가 더해진다. 콘 브레드나 프렌치 토스트, 와플 등 단 메뉴들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 기본적으로 계란이 들어가는 요리가 특히 많은 편이다. 최근 들어 한국에도 와플과 팬케이크 숍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 역시 이런 ‘브런치 문화’가 대중적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음식보다 분위기가 브런치의 핵심
브런치에서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늦은 아점을 먹는 분위기다. 뉴요커들은 어떤 브런치를 먹을 것이냐보다 평일에 각자 직장과 학교를 다니느라 바쁜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주말이 되어 비로소 한자리에 모인다는 데 큰 의미를 두는 듯했다. 같이 일했던 레스토랑의 동료들에게 흥미 위주로 브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애인과 함께 한가한 주말을 즐기는 시간, 또는 못 만났던 친구를 볼 수 있는 기회라 매우 특별한 시간이라는 얘기를 주로 했다.

이들은 브런치에 가벼운 칵테일을 곁들여 마실 때도 있다. 주말이니까 낮술도 괜찮다는 말일까? 어떤 친구는 금요일 밤 친구들과 한잔한 뒤 숙취 해소를 위해 브런치에 토마토 주스가 들어간 칵테일인 ‘블러디 메리’를 꼭 마신다고 했다. 이네들도 ‘해장술’이란 개념이 있는 건가 싶어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향긋한 커피 한 잔과 갓 짠 과일 주스는 거의 모든 이가 시키는 기본 음료. 여기에 샴페인이 들어간 미모사, 벨리니 등 가벼운 느낌의 브런치용 칵테일을 가볍게 곁들여 마시는 식.

나도 유학 시절 격식을 차린 저녁식사보다는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브런치나 같이 먹을까?”라며 의기투합했던 기억이 더 많다. 느지막한 일요일 오후에 그리니치 빌리지 같은 곳의 한적한 골목길에 있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던 추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그 여유로움이 새삼 기분을 좋게 한다.

주 5일제가 일찍 정착된 나라답게, 또 싱글들이 넘쳐나는 도시답게, 열심히 일한 후 주말만은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까운 집 근처에 가서 수다를 떨면서 브런치를 먹던 뉴요커들의 모습이 참 여유로워 보였다.

그들보다 훨씬 바쁜 생활을 하느라 가족끼리 대화하기 힘든 요즘, 꼭 미국식 메뉴로 브런치를 먹어야 맛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모처럼 모여 앉아 천천히 아점을 즐기는 것이 ‘한국식 브런치’가 아닐까. 음식을 먹는 행위만 모방할 것이 아니라 그 만남의 자리 자체를 즐기며 얘기를 나눠 보는 건 어떨까.

에그 베네딕트

재료(4인 기준) 계란 8개, 햄 8장, 잉글리시머핀 4개(식빵으로 대체 가능), 홀랜다이즈 소스 반 컵(레서피 아래에), 감자 2개(껍질 벗겨 1cm 두께로 자른 후, 끓는 소금물에 익혀 물기 제거), 양파 1/4개(채 썬다), 파슬리 다진 것,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

만들기
1. 식초 넣은 끓는 물에 불을 약하게 한 뒤 계란을 살며시 넣어 익힌다(물 3ℓ에 25ml의 식초, 소금 1큰술이 적당).
2. 3~4분간 익혀 흰자는 완숙, 속의 노른자는 반숙 상태에서 꺼낸다.
3. 잉글리시 머핀은 반으로 갈라 굽는다.
4. 잉글리시 머핀 위에 햄을 올리고 수란을 얹는다. 홀랜다이즈 소스를 끼얹어 낸다.
5. 구운 감자는 달군 팬에 올리브 오일을 붓고, 양파를 볶다가 물에 익힌 감자를 넣어 노릇하게 구워낸 뒤 소금ㆍ후추로 간하고 파슬리 가루를 솔솔 뿌린 감자도 곁들여 낸다.

홀랜다이즈 소스 만들기
1. 버터를 소스팬에 넣어 녹인 뒤 팬에 다진 샬롯, 와인 식초, 통후추를 넣어 식초가 거의 날아갈 정도로 증발시킨 후 찬물을 붓고 체에 걸러 그 물만 받아 놓는다.
3. 스테인리스 볼에 계란 노른자 2개, 위의 샬롯 식초물을 넣고 위스크로 잘 섞어 준다. 거기에 따뜻한 물 1큰술을 넣어 잘 저어준 뒤 중탕 냄비 위에 스테인리스 볼을 올린다. 위스크로 저어주면서 계란을 익힌다.
4. 계란 색이 연한 크림색으로 변하고 부피도 좀 늘어난 것 같고, 볼 주변에 계란이 눌어붙기 시작할 때 버터와 혼합할 시간이다. 볼을 중탕 냄비 위에서 아예 내린 뒤 녹여서 따뜻하게 유지한 버터를 국자로 천천히 흘려 넣어주면서 위스크로 저어 소스를 만든다.
5. 소금ㆍ후추ㆍ핫소스ㆍ레몬 즙으로 취향에 맞게 간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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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씨는 미국 CIA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2006년 귀국해 현재 언니 김윤정씨와 푸드 스튜디오 ‘그린 테이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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