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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과 섞음의 문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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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27면

“우리는 밥상 위에 나물과 된장찌개가 있는 것을 보면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쓱쓱 비벼 먹기를 좋아하잖아요.”

김태경ㆍ정한진의 음식수다

비빔밥은 우리 삶 속에 이렇듯 일상화되어 있다. 전주비빔밥·진주비빔밥·해주교반·헛제삿밥과 같이 전통적인 비빔밥의 형태로도 발전하였다.

비빔밥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농번기에 바쁜 일손을 덜기 위해 밥과 찬을 섞어 먹었다는 설, 산신제나 동제(洞祭) 후에 제물을 신인공식(神人共食)해야 하니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받아 섞어 먹게 되었다는 설 등이다. 문헌상으로는 1800년대 말 『시의전서』에 비로소 등장하는데, 비빔밥을 ‘부븸밥(汨董飯)’으로 표기하고 있다. ‘골동(汨董)’은 여러 가지 물건을 한데 섞는 것을 말하며, 골동반(骨董飯)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밥과 찬을 양념과 함께 섞어 먹는 비빔밥과 같은 음식은 세계 음식문화 안에서도 아주 독특하고 드물어요. 돈부리(덮밥)의 경우, 일본인들은 섞지 않고 꾸미가 얹어진 밥을 그대로 떠서 먹죠. 일본에서 돈부리를 먹을 때 섞어 먹는 사람은 거의 틀림없이 한국인이래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섞는 데 일가견이 있지. 섞어찌개, 잡탕, 잡채, 비빔국수 등. 심지어 생선회도 밥에 야채와 함께 넣어 고추장으로 마구 비벼 먹으니 말이야.”
“재미있는 것은 중국 식당에서 여러 가지를 섞어 만든 볶음밥을 먹을 때도 자장이 접시에 같이 나와 섞어 먹어야 직성이 풀리죠.”

“그래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은 이미 섞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직접 섞어서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것을 ‘비빔밥 문화’라고 규정하면서, 이 문화가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했지.”

“어떤 이들은 이러한 문화가 디지털 기술과 만나면서 휴대전화이자 디지털 카메라이기도 한 제품처럼 이런저런 기능이 하나로 통합되는 컨버전스(convergence) 제품을 만들어내게 한다고 말하기도 하죠.”

“비빔밥을 섞음의 문화, 융합의 문화로 해석한 셈이지. 게다가 비빔밥을 음양오행이 구현된 밥 한 그릇으로 해석하기도 하잖아. 식물성과 동물성의 절묘한 조화, 그리고 갖가지 나물의 오색과 오미가 어우러진 음식으로 말이야.”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비빔밥을 화반(花飯)이라 부르기도 한다. 잘 알려진 비빔밥으로는 전주비빔밥과 진주비빔밥이 있다. 둘의 차이를 잠시 살펴보자. 전주비빔밥은 쇠머리를 고아서 그 국물에 밥을 하지만, 진주화반은 양지머리를 고아서 그 국물로 밥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사골국물로 밥을 하는 경우가 일반이다. 진주비빔밥은 콩나물 대신에 숙주나물을 쓰며, 전주비빔밥이 밥과 함께 콩나물국을 내놓는 데 비해 진주비빔밥에는 선짓국이 반드시 따른다. 한편 영남 사림문화에서 유래된 안동ㆍ진주의 헛제삿밥도 일종의 비빔밥이라고 볼 수 있다.

경남 진주에 있는 ‘천황식당’(055-741-2646)은 1929년에 문을 열었으니,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빔밥의 명가 중 하나다. 이 집의 진주비빔밥은 먹기 좋게 잘라진 나물과 신선한 육회가 밥과 잘 섞여 먹기에 그만이다. 입구에 놓여 있는 테이블은 세월의 때가 앉아 거무스름하면서도 윤이 나는 것이 인상적이다. 지금은 손자며느리가 대물림해 3대의 명맥을 잇고 있는데, 본인 대에서 100년을 채우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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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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