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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기증의 양쪽 측면(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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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암으로 숨져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한 교수의 시신이 본인의 뜻에 따라 해부용으로 기증되고 각막은 장기이식돼 빛을 잃었던 한 생명에게 광명을 되찾아 주었다. 그런가 하면 고혈압으로 쓰러져 뇌사판정을 받은 한 40대 남자는 가족의 뜻에 따라 장기이식용으로 기증돼 무려 다섯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누리게 했다.
이 두가지 경우는 시신을 여러 사람을 위해 「활용」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는 공통되나 전자는 분명한 본인의 유지를 존중해서 이뤄진 것이고,후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족들의 의사로 결정된 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는 후학들의 생체실험을 위해 자신의 유체를 기꺼이 맡긴 서울대의대 고 이광호교수의 「살신성의」의 거룩한 뜻을 깊이 기려 마지않는다. 해부학의 권위자였던 이 교수가 자기 생명이 희생가망이 없음을 알고 후배교수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자신의 몸을 해부용으로 써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생전의 이 교수가 평소에 해부실습용 시체를 구하기 어려운 실정을 안타까워 했다고 하니 이 나라 의학발전을 위한 고인의 의지와 희생정신은 훌륭한 귀감으로 영원이 기려지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 가족들도 이에 흔쾌히 동의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도 발생할 여지가 없다.
뇌사상태에 빠진 한 남자의 장기가 다섯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주었다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훌륭한 사회적 기여임엔 틀림없다. 이미 회생불가능한 인체를 이용해 절망상태에 빠져 있는 불치병환자의 삶을 되찾아준 것은 실용적이며 효율적인 의료행위의 개가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의문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본인의 자발적 의지가 아니라 가족들의 의사에 의해 결행된 시술이라는 점이다.
얼마전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한 고등학생의 장기가 부모의 의사로 타인에게 이식된 사례는 당사자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친다해도 이번 경우는 40대의 성인이다. 고혈압으로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에 본인이 장기이식 허용여부에 대한 의사표시를 할 겨를도 없었다. 이런 경우 가족들의 의사만으로 시신을 마음대로 다루어도 괜찮은 일인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사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는 생명이 끊긴 단순한 사체라는 감정 이상으로 종교적·윤리적·도덕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뇌사자의 장기이식에는 실용성과 효용성만을 앞세울 수 없다. 또 그랬을 때 파생될 수 있는 문제 또한 엄청난 부작용을 수반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장기이식의 의학적 성공만을 평가할 게 아니라 그 이전에 갖춰야 할 조건이나 절차 등 법적·윤리적 문제 등이 하루속히 정립돼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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