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국은 위기” 정치공세/김대중대표 대선후보자격 첫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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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약제시보다 실정공격 초점/「YS기세」제동 평가절하 시도
김대중민주당대표는 26일 대통령후보자격으로 가진 첫 기자회견을 대여 정치공세로 일관했다.
통상 대통령후보로서의 첫 회견은 화려한 정책공약 및 집권청사진 제시로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김 대표는 노태우대통령의 실정 및 부도덕성,그 연장선상에서 김영삼민자대표에 대한 흠집내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김 대표는 또 현시국을 위기로 단정,논쟁의 방향을 잡고 제2이동통신(이통)사태로 주가가 올라간 김영삼대표를 견제하는데 무척 신경을 썼다.
당초 김 대표는 『앞으로 추진할 각 분야의 정책을 내놓을 생각』이었지만 「시국의 심각한 위기상황」때문에 구상을 바꿨다고 한다.
이통사태로 집약된 「현정권의 부도덕성과 국정의 총체적 파탄」이라는 그의 상황인식에서 볼때 집권정책 제시는 한가하며,국민적 불안감을 씻어주기에 미흡하다는 것이다. 대신 정치공세를 취함으로써 김영삼후보의 기세에 제동을 걸고 노­YS간의 간격을 넓힐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회견내용은 이통파문과 맞물린 노태우대통령의 민자당총재직 이양,「김영삼총재 등장」에 따른 여권의 권력중심이동을 집중 추궁했다.
또 선경에 이동통신을 포기시켜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와 강력한 지도력을 보인 김영삼후보의 힘을 평가절하하려는 내용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는 거국내각구성을 제안하는 이유로 신행주대교 붕괴·증시붕락·중소기업 도산·이동통신사태 등에서 보듯 『민자당정권이 난국대처능력을 완전 상실했기 때문』으로 들고 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명예총재로 민자당에 머물게 아니라 당적을 버리고 초당적 위치에서 잔여임기 6개월에 임하라고 요구하면서 이를 야당의 「국정동참권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국내각구성 및 대통령의 당적이탈 요구는 그가 선거때마다 제기해온 단골메뉴여서 현시점이 다른 어느 때보다 특별히 난국이기 때문에 제시했다기 보다는 정치공세의 시기를 앞당겼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통사태 등으로 한층 실감난 노 대통령의 실정과 공신력 실추를 더욱 부각시켜 『이번만은 갈아보자』는 정권교체심리를 부추기기 위한 선거전략의 일환이다.
87년 「전두환대통령­노 후보」당시와 달리 겉잡을 수 없는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이 펼쳐지는 지금 이통사태로 벌어진 노 대통령과 김영삼후보사이의 유대를 한층 느슨하게 만들고 노 대통령의 지원의지를 약하게 하려는 의도도 함축되어 있다.
이와 함께 그는 노 대통령과 김영삼후보,정주영국민당후보와 자신간의 난국수습을 위한 4자간 「비상정치회의 소집」을 거국내각의 연장선에서 제안했다.
그는 『쟁점이 있을때 한번씩 만나는게 아니라 난국을 수습할 공동책임이 있는 우리 네사람의 상설협의기구』라고 성격을 규정,현정권의 무기력 및 권력누수를 최대한 유권자들에게 심으려 시도하고 있다.
그는 김영삼후보의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전략을 「노­김영삼 공동책임론」으로 되받아치고 YS의 이통사태 해결을 「강력하고 깨끗한 정부론」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 대표는 『김영삼후보가 반년넘은 이동통신논란을 묵인해오다 여론악화에 책임이 없는 양 노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인신공격까지 해 정치윤리의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혹평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위신실추로 반대급부를 얻게 될 김영삼후보의 자세를 『지도자가 취할 떳떳한 태도가 아니다』고 비난했다.
이는 김영삼후보의 야당식 도전에 분함을 느끼는 청와대와 민자당내 구민정계 출신들과 생리적 여권지지 유권자를 향한 일종의 이간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와 범여권결속이란 상반된 구도속에서 고민하는 YS를 흔드는데 총력을 쏟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견에서 김대중후보는 『영욕이 아울러 겹쳐진 양김시대를 훌륭히 마무리짓자』는 우호적 수사를 동원했으나 양김구도에서 벗어나 김영삼후보와 다른 면모를 보이려 애썼다.
온건·합리화의 「뉴DJ 이미지」 2단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앞으로 정국을 시끄럽게 할 소지가 있는 쟁점과 관심사의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경부고속전철·영종도신공항건설 등 대형국책사업을 다음 정권에 넘기라고 주장한 것은 유사한 이통사태 발생에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것이다.
또 물가·증시회복·중소기업 활성화·추곡수매문제 등 「총재 김영삼」이 내놓을 현안해결책을 먼저 언급해 김빼기를 구사했다.
특히 자치단체장선거를 광역과 기초중 하나만이라도 올해안에 실시하지 않을 경우 『예산과 입법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단체장 쟁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의 난국수습책에 대해 민자당은 냉담한 편이다. 거국내각이나 4자 비상정치회의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선전공세용이며 실은 난국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이날 제안은 여야 상호 공방꺼리라기 보다는 일방적 주장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민주당은 내막적으로 자치단체장선거문제와 정기국회의 원구성(상임위 배정)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처리하느냐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정기국회는 어떻게 하든 명분을 찾아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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