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경제정책 조율 잘해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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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요 경제정책을 둘러싼 당정간의 이견이 상당히 노출되고 있다. 붕괴 직전에 있는 증시대책을 포함해서 중소기업 지원방안과 내년 예산편성 내용 등에 관해 이미 심각한 의견차이가 드러났다.
집권당과 정부의 핵심 경제관료들이 국민들의 실생활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을 내놓고 심각하게 논의하고,때로는 대립의 양상을 보이는 것은 제한된 여건하에서 최선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산고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책이 나오기까지 당정간의 「정책 협의」 형태를 가급적 정치가 경제를 누르는 힘의 논리로 해석하지 않고 정치와 경제논리의 조화의 과정으로 보고 싶다.
그러나 최근 당정간에 검토되고 있는 몇가지 경제정책은 실물경제에 별 도움을 주지 않거나 효과도 없으면서 지금까지의 주요 정책들과 상충돼 도대체 무엇을 위해 떠들썩했는지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선거를 앞둔 선심용 시책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만 하다.
주가의 붕괴장세를 보고 민자당 일부에서 강도 높은 부양책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정부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주식 취득한도를 높이고 연금·기금 등의 주식 투자를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쫓기면서 내놓는 정책들이 시장을 얼마나 교란시켰는가를 우리는 89년 한은의 특융에서 체험했다. 바로 얼마전까지만해도 절대 변경할 수 없다던 정책들을 다시 허물려면 정책의 완화가 증시의 회생으로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자신이 앞서야 한다. 더듬더듬 짚어가는 「정치적 감각」만으로는 위험천만이다. 우선은 정치권의 안정이 제1의 증시대책이다.
당정이 중소기업을 위한답시고 발표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도산은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담보도 없는 중소기업이 무엇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느냐고 업자들은 하소연한다. 은행의 대출한도는 뻔한데 중소기업의 진성어음은 무제한으로 할인해주라는 당의 주장은 너무 경솔한 일이다. 신용보증기관의 기금은 바닥이 났다. 말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망 중소기업만이라도 회사가 굴러갈 수 있도록 실효성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내년 예산편성을 놓고 민자당은 정부안보다 예산을 더 확대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근로소득세와 법인세는 깎아주면서 돈은 더 많이 써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가장 보수적인 세수추계로 당의 「정치적 배려」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일부 시행되고 있거나 협의과정에 있는 이러한 정책들이 일방적으로 한쪽의 논리에 몰린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정부 당국자가 새로운 현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러더십을 발휘해야 주가도 오르고,우량 중소기업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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