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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보루”로 거듭나야/40돌맞는 변협 역할과 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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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성고문사건」변호 등 5공 고발에 앞장/「군투표부정」 등 최근 현안엔 침묵일관
인권옹호와 사회정의실현을 내걸고 결성된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홍수)가 창립 40주년을 맞은 것을 계기로 변협의 역할과 위상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권의 보루로,민주주의의 첨병으로 인식되고 있는 변협이 최근들어 침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 일각에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변협은 1950년 6월17일 서울에서 각 지방변호사회장과 대의원들이 모인 가운데 창립총회를 가졌으나 6·25로 중단되고 52년 7월28일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총회가 속개돼 서울총회에서 채택됐던 협회규약을 확정짓고 협회장에 최병석,부회장에 육순구,상무위원장에 배정현씨를 선출했다.
창립후 변협은 급성장해 외형에선 최고 재야법조단체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활동이나 조직·기능에서는 취약했다.
변협은 85년 1월 김은호회장체제가 출범하면서부터 정권견제세력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변협은 최초로 인권보고서를 발간,철권통치를 휘두르던 5공정권에 도덕적 타격을 가한데 이어 86년에는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피해자 권인숙씨의 변호를 맡고 문귀동경장을 고발하는 등 활발한 인권활동을 벌였다.
87년 등장한 문인구회장체제도 김 회장 시기에 못지않게 활발한 대 정부투쟁을 벌인 집행부로 기록될 만하다. 87년 4월 당시 전두환대통령이 「호헌선언」을 발표하자 변협은 제일 먼저 호헌반대성명을 내고 변호사들이 직접 직선제개헌쟁취 시위에 참가,개헌여론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문 회장체제 이후 변협의 투쟁성은 현저하게 감퇴되고 말았다.
조선대 이철규군 의문사사건·강경대군 치사사건때도 변협은 철저하게 함구했고,협회고위간부가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관련돼 구속된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을 변호한 사건으로 이 간부에 대한 퇴임촉구서명운동이 벌어지는 등 내홍도 겪었다.
최근에는 이지문중위의 군부재자투표 부정 고발사건,14대총선 당시 안기부원의 흑색선전물 살포사건,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연기 등 핵심 시국사안에 대해 변협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40세 장년기를 맞은 변협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한쪽 축으로 삼고 무역거래·지적소유권·조세·공해환경문제·공정거래·노사문제·소비자보호 등 새로운 법률수요에 부응하는 것을 또 하나의 축으로 삼는 새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다수 법조인들의 의견이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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