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만 재미 … 개인 지갑은 아직 홀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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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21면

‘도요타자동차 영업이익이 일본 기업으로는 최초로 2조엔 돌파’ ‘일본 경상수지 흑자 4년 연속 최고치 갱신’ ‘버블 붕괴 이후 16년 만에 공시지가 상승세로 반전’.
최근 일본 경제를 둘러싼 뉴스를 보면 이처럼 장밋빛 일색이다. 회복 기조에 들어선 일본 경제가 이제는 1980년대 말의 버블 때와 같은 ‘제2의 도약’을 금세라도 이룰 것 같은 분위기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직 아니다’.

회복기조에도 성장률 ‘2%벽’ 못 넘는 일본 경제

‘성장률 2%대’의 높은 벽=일본 내각부는 17일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을 발표했다. 물가변동의 영향을 뺀 실질성장률 기준으로 연 2.4%의 수치였다.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기에 들어섰다고 평가되는 2005년 3분기 이후 총 7분기 중 성장률 2%대(연율 기준)의 벽을 넘어선 것은 연말 효과로 인해 반짝 상승했던 지난해 4분기(5.0%)가 유일하다. 민간 연구기관의 올해 성장률 예상치도 2.0% 수준이다. 한국의 4~5%, 중국의 10~11%에 비할 때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

실생활에 보다 가까운 수치인 명목성장률의 부진은 더하다. 지난해엔 1.3%로 실질성장률의 1.9%를 밑돌았다. 흔히 물가는 조금이라도 상승하기 때문에 실질성장률이 명목성장률보다 낮은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아직까지 디플레이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이 같은 ‘명실(名實) 역전’ 현상이 1998년 이후 9년 연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 경제가 제대로 정상 궤도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래선 2002년 2월부터 63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역대 최장의 경기 확대기’라는 평가가 어색할 정도다.

이는 과거의 경기확대기와 비교해도 명백히 나타난다.

65년 11월부터 70년 7월까지 4년9개월간 이어진 ‘이자나기 경기’ 때는 연평균 성장률이 11.5%였다. 또 80년 중반부터 91년 초까지 계속된 ‘버블 경기’ 때는 5.4%다. 반면 이번 경기확대기의 연평균 성장률은 2.2%에 그치고 있다. 또 좀 나아지는가 싶으면 다시 경기 조정기에 들어가는 일찍이 없던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늘지 않는 개인소득=그렇다면 왜 일본 경제는 2%대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가장 주된 요인은 역시 가계 소득이 늘지 않아 국내총생산의 60%를 차지하는 개인소비가 제대로 뻗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임금부터 살펴보자. 일하는 사람의 총소득(고용자 소득)은 2005년부터 연평균 1%가량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1인당 임금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이는 기업 실적 호전 등으로 직장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개인에게 돌아가는 임금은 오히려 줄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노동분배율을 봐도 알 수 있다. 노동분배율은 실제 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얼마나 종업원들에게 환원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그래프 참조>

90년대 말을 정점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하향세가 상승세로 반전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분모, 즉 기업의 수입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분자, 즉 기업들이 지급하는 임금과 인건비는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봄의 ‘춘투’ 결과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돼 있는 도요타·소니 등 주요 49개 대기업의 임금상승률 또한 평균 1.85%에 불과하다.

기업들의 지나친 몸사리기=일본 기업들은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며 근육질로 변신했다. 게다가 최근 4년째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하며 돈방석에 앉아 있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경쟁력 유지를 해야 한다” “이미 일본의 임금은 충분히 비싸다” 등의 이유를 대며 임금 인상에 소극적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일본 게이단렌(經團連ㆍ한국의 전경련 격)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임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며 인상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계속 내비치고 있지만 기업들은 꿈쩍도 않는다. 90년대의 과잉고용과 구조조정의 쓰라린 경험과 반성 때문이다. 대신 기업들은 차입금을 갚고 주주에게 배당금을 늘리는 데 열중하고 있다. ‘얌전한’ 일본 근로자들도 이를 대체로 수용한다.

이를 놓고 한국 내 언론과 재계에서는 “부자의 몸 사리기”라며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실은 이것이 일본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소득이 늘지 않으니 소비가 늘 수 없다. 소비가 늘지 않으니 성장 동력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최근 골프장, 고급 음식점, 온천여관, 여행사 등에서 소비가 꿈틀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주로 이는 ‘기업의 공금’으로 지출되는 자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나와 소비되는 부문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일본 내 신차 수요 전망치를 보면 전년도 대비 2%가 줄어든 552만 대다. 최근 23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아무리 자동차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낮은 수치다. 이는 개인소비가 몰리는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미쓰코시(三越)·세이부(西武) 등 거의 모든 백화점 매출이 하향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장 필립 코티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일본의 현 성장 패턴은 불균형적”이라며 “성장의 견인차를 수출이나 설비투자 등의 기업 부문에서 가계 부문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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