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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어떤 곳일까, 저 레일 끝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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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도업계의 '큰손'. 바로 한국 여행자다. 유럽 23개국을 기차로 여행할 수 있는 유레일, 지난해 한국인 6만56명이 그 패스를 샀다. 미국인에 이어 세계 2위다. 일본은 물론 여행 많이 하기로 유명한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사람보다 많았다. 도버해협 지하로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스타, 지난해 한국인 10만 명이 이 열차로 바다를 건넜다. 세계 1위다.

세계 철도업계의 거물들이 잇따라 한국을 찾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유레일 패스를 파는 유레일 그룹 GIE의 국제마케팅매니저 애나 디아즈가 한국에 왔다. 유레일을 이용한 한국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디아즈는 사흘간 머물며 '왜 유레일을 이용했는가' '유레일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 등을 묻고 돌아갔다. 이번 달 21일에는 유로스타의 국제영업분야 최고 매니저 마이클 데이비스가 한국을 찾는다. 데이비스는 영국에 새 선로와 역이 생겨 유로스타 운행시간이 20분 단축됐음을 직접 홍보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

도대체 왜 한국인은 기차 여행에 열광하는 걸까? 애나 디아즈는 "기차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는 대단히 정서적(emotional)이고 로맨틱하다"고 말한다. "왜 유레일을 이용했느냐"는 질문에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혹은 "동행자(배우자)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유난히 많았다. 미국.일본에선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반응이라 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한 대담에서 "문명이 바뀌면 옛 것은 그리운 향수가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중 최고로 기차를 꼽았다. "옛날엔 운송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체로 관광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에세이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저서 '여행의 기술'에서 "모든 운송 수단 가운데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기차"라고 했다. 배나 비행기와 달리 "열차 밖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기차는 단순한 탈것 이상이다. 더 빠르고 쾌적한 비행기가 등장한 지 오래지만 기차 여행의 수요는 여전하다. 해외의 경우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비용? 단지 돈 때문이라면 버스를 타거나 여럿이 함께 차를 빌리는 편이 낫다. 요즘은 저가 항공사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기차 여행을 꿈꾸는 건 '그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에만 서면 괜스레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사람, '쿵쾅쿵쾅' 기차 소리가 어딘가 심장 박동 소리와 닮았다고 생각해 본 사람, 소실점 너머 끝도 없이 뻗은 레일을 바라보며 인생의 밑그림을 그려봤던 사람…. 그들은 안다. 기차를 타면 누군가 새로운 인연을 만날 것 같고, 기차를 타면 어딘가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 줄 것만 같은 그 느낌을.

week&이 여행자들의 로망, 세계 기차 여행을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유럽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유레일, 아프리카의 호화 열차 블루 트레인, 시베리아 횡단특급 즐라토이 아룔…. 세계 유명 기차들이 지금 플랫폼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떠나시죠. "다음 열차, 다음 열차는 세계로 가는 기차입니다."(시리즈 2, 3면에 계속)

글=김한별 기자 사진=사진작가 이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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