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주택 실패로 돈줄 막혔다/「정보사땅 사기」해결 열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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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예치금 빼낸 날이 조합비반환 최종일/정­정씨 물주로 제일생명이 걸린듯
국민은행대리 정덕현·성무건설사장 정영진씨 형제가 추진했던 「강남연합주택조합」문제가 정보사 부지매각 사기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은 성무건설회장 정건중씨일당이 제일생명으로부터 사취한 4백73억원중 약70억원정도가 정영진씨를 통해 주택조합비반환금 및 이자로 흘러들어갔다는 정도만을 파악했을 뿐 주택조합을 중심으로한 관련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는 규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막바지단계에서 제일생명의 예치금 2백70억원이 예치당일 정덕현씨에 의해 빼돌려진 지난해 12월23일이 바로 주택조합원들이 정씨 형제에게 통보한 조합비반환 「최종 통첩일」이었다는 중요한 단서를 포착함으로써 「강남연합주택조합」이 이번 사건의 의문점을 푸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예치금입금당일 정영진씨 계좌로 빠져나간 10억3천4백만원중 상당부분이 다음날인 지난해 12월24일부터 연말까지 주택조합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확인,이같은 심증을 한층 굳힌 상태.
지금까지 수사결과 정씨형제는 90년부터 덕현씨의 모임인 K상고동문들을 중심으로한 주택조합을 결성,덕현씨가 자금관리,영진씨가 부지구입을 담당하면서 약5백명(추산)의 조합원들로부터 1인당 2천5백만∼5천만원씩 약2백억원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정씨형제는 대상부지구입에 실패했고 영진씨는 미리 거둔 조합비로 사채놀이를 하다 19억원정도를 손해봤다는 것이다.
검찰은 정영진씨가 주택조합문제로 골치를 앓던 지난해 정건중씨를 알게되고 뒤이어 제일생명 윤성식상무도 만나게 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세사람이 지난해 10월 이후 빈번하게 만나는 과정에서 영진씨는 자신의 주택조합문제를,정씨와 윤상무는 중원공대설립과 사옥부지물색 등 각자의 현안에 대해 깊숙한 논의를 거듭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정씨는 이무렵 거액의 주택조합비를 보관하고 있는데다 단기사채 동원능력이 뛰어난 영진씨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수사진은 이와 관련,『정씨는 자신의 상업을 위해 1백50억원을 대주겠다고 약속한 재일교포 후원자가 지난해 4월에 사망하자 정씨형제에게 많은 부분 의존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씨형제에게 상당한 신세를 진데 대한 「반대급부」의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정씨는 제일생명을 상대로 「한건」을 올린뒤 ▲영진씨를 성무건설 사장겸 자금관리인으로 앉히고 ▲정보사부지 1만7천평중 1만2천2백59평에 아파트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워 주택조합 사업을 「승계」했던 점 등이 그것이다.
검찰은 이같은 정황으로 미뤄 정씨일당과 정씨형제는 지난해 12월23일 이전부터 주택조합 사업의 무산위기를 막고 정씨가 89년부터 구상해온 중원공대 설립추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물주」를 물색하기로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물주」로 등장한 사람이 사옥부지 마련이 현안이었던 제일생명의 윤 상무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대목에서 윤 상무가 정­정 일당에게 넘어가 정보사부지 매입성사 가능성을 확신하게 됐고 더 나아가 비자금 조성계획 등 「약점」을 잡혀 예치금 인출을 양해,결과적으로 4백73억원을 사취당하는 사태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있다.
물론 검찰은 전합참군무원 김영호씨와 김인수·곽수열·임환종씨 등 브로커들의 교묘한 사기술이 어처구니 없는 사기극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수사의 기본구도는 계속 유지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정씨형제의 주택조합 추진에다 정씨의 중원공대 설립계획,제일생명의 사용부지 구입필요성이 각자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복합돼 이번 사건이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있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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