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로들이 신속한 마무리 촉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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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불법 대선자금과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로 온 나라가 몇달 째 시끄러운 가운데 몇몇 원로들이 정치권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나선 것은 가뭄에 단비처럼 신선하다. 물고 물리는 끝없는 정치공방을 중단시키고 분노한 민심을 어루만지는 데 나서줄 것을 이들 원로에게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충고는 반갑다. 金추기경은 "대선자금 문제는 털고 청산하고 가야 한다"며 "당사자들이 진지한 고해성사를 하느님 앞에 말씀드리는 것처럼 국민에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하면 감옥 갈 각오도 하고 나라를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다"는 그의 말은 국민의 심중을 대변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해답을 알고 있는데 정치지도자란 사람들은 왜 이를 굳이 외면하고 있는가. 국가와 국민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이해득실이 앞서기 때문 아닌가.

金추기경은 "국가 혼란을 풀어가야 할 분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 했다. 박관용 국회의장도 정치지도자들의 연쇄회견을 비판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회견하고, 다음날엔 노무현 대통령이, 그 다음날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회견한 데 대한 지적이다. 朴의장은 盧대통령 회견에 대해 "남이 장에 가니까 따라서 간 것"이라고 했고, 崔대표 회견에 대해선 "내용 자체를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솔직한 고백은 없이 서로 '네 탓'만 하며 싸움을 키워가는 행태에 국민은 넌더리를 내고 있다.

대선자금과 측근 비리 수사는 브레이크가 없다. 검찰이 알아서 적정 수준에서 마무리할 수도, 언론이 나서서 중재할 수도 없다. 당사자인 정치권이 "그만하자"고 했다간 국민에게 뭇매를 맞을 형편이다. 그렇다고 가는 대로 놔뒀다간 경제는 거덜나고 대한민국호는 침몰할 것만 같다. 기댈 곳은 존경받는 원로들뿐이다. 원로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탈출구 없는 이 사태에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와 정치권을 향해 소모적인 대결의 늪을 벗어나 대선자금 정국의 신속한 마무리를 촉구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