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외교, 드라마틱한 변화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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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26면

신인섭 기자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외교정책 보좌관을 지낸 스티븐 J 예이츠 ‘DC 아시아 자문회의’ 의장이 지난 9일 방한해 연세대에서 열린 동아시아협의회(CEAA) 주최 세미나에 참석했다. 예이츠는 대통령의 임기 고비마다 행정부 내 권력 중심이 이동하고 이것이 외교정책 변화를 불러오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의 강연(‘대통령의 정치와 미국 외교정책 결정’)을 정리했다.

스티븐 J 에이츠 前 미 부통령 외교정책보좌관

미국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영향력이 부상하고 쇠락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다. 물론 정치무대에서 음모와 같은 요소들은 불가항력적인 것이지만 나는 재선에 성공한 세 명의 미 대통령이 취한 정책들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대체로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 권력은 백악관에 집중된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내세운 공약에 집중하게 되고, 물러나는 행정부가 추구해온 정책을 자신들의 것과 조화시키는 데 주력한다. 정책을 탐색하고 만드는 단계다. 당선된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게 마련이고, 따라서 다양한 방안들에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권력의 중심은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조언하는 참모들에 집중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은 경험을 쌓게 되고 행정부는 이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한 뒤 내세울 정책들을 실천에 옮겨나간다. 권력의 중심은 정책 집행기관들(행정부 관료집단)로 이동한다. 하지만 측근들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대통령의 심중을 꿰뚫고 있다’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우위에 서는 것이다. 오래지 않아 백악관은 재선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다. 국내 정치에서의 경쟁에 맞서기 위해 외교정책은 신중하게, ‘위기 회피 모드’로 전환한다. 정책 집행기관이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다. 대통령은 재선 승리를 위해 주요 정책을 수정하지도, 실수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당선 가도에 매우 불리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의 2기 행정부는 주요 외교정책들을 재평가한다. 보통 1년 이내에 이뤄지는데 이때 권력의 중심은 다시 대통령 주변의 측근들로 이동한다. 하지만 1기 출범 초기와 달리 대통령은 자신이 어느 정도 확립해놓은 주요 정책을 잘 이행하는 데 무게를 두기 때문에 2기에 들어서도 관료들이 갖고 있는 힘은 대체로 유지된다.

부시 행정부에서 나타났던 외교정책의 주기적인 변화 사례를 보자. 2000년 대권에 도전한 부시 팀의 주요 외교정책 이슈 중 하나는 중국 문제였다. 콘돌리자 라이스와 로버트 졸릭(두 사람은 부시 행정부 1기 국가안보보좌관과 무역대표부 대표를 지냈고 2기 들어 국무장관, 부장관으로 일했다)은 클린턴 행정부가 추구해온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그들은 미ㆍ중 관계는 오히려 ‘전략적 경쟁관계’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 1기 첫해 행정부는 미국의 대중 외교정책 기조를 새로 바꾸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대중 정책이 변화한 것은 2004년 말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다. 새 정책은 2000년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 다시 말해 중국과의 전략적 협조 노선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대북 정책은 어떤가. 2000년 캠페인 기간 중 부시 팀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인 1994년 제네바 합의와 미사일 협상을 강력히 비난했다. 북한과의 협상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출범 초기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 재검토가 시작됐지만 9ㆍ11 테러 이후 고위 관료들의 머릿속에서 대북 정책은 사라졌다. 심도 있는 내부 논의 대신 잠재적인 북한의 핵확산 위험만 부각됐다.

결국 미국은 최신 정보(북한의 고농축 우라늄을 통한 핵개발 의혹)를 바탕으로 새 대북 접근법을 만들어냈다.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당시 국무부 차관보가 우라늄 핵개발 의혹을 제기해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이후 협상의 틀은 북ㆍ미 양자구도에서 6개국이 참가하는 다자구도로 전환됐다. 협상의 끈은 이어졌지만 재선에 나선 부시 행정부는 “위기를 피하자” “시간만 벌자”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재선에 성공한 뒤 두 번째 정책 재검토가 시작됐고, 새 협상대표(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주도하는 수정된 접근법으로 결론 났다.

테러와의 전쟁은 9ㆍ11 이후 부시 행정부의 최우선 정책이었다. 흔히들 언급하는 ‘9ㆍ11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는 이를 상징한다. 부시 행정부가 이후 내놓은 전략은 규모 등에서 매우 공격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재선에 성공한 부시 행정부는 이 분야의 전략과 정책에 대해서도 재검토에 들어갔고 일부 수정했다. 그러나 정말 드라마틱한 변화는 ‘테러와의 전쟁’ 과 관련해 이것과는 이해관계가 없는 새 대통령이 등장해야 가능할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의 잔여 임기는 2년이다. 그 사이 미국의 외교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행정부에 남아있는 인사들은 정책변화를 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폭으로 하려 할 것이다. 골치 아픈 중동문제는 이들에겐 일상이 됐고, 다음 행정부를 이끌 인사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 문제와 이란 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만족스럽진 않지만 우리에겐 ‘가장 덜 나쁜’ 방안이다(사실 좋은 방안들이 없다). 지도자들은 북한ㆍ이란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와 경제적인 제재 수단을 병행할 것이다. 군사적 선택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게 아니다. 중국과도 경제정책을 두고 긴장이 고조될 수도 있지만 전략적 협력관계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대개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외교정책은 국내 현안들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물론 9ㆍ11 이후와 이라크 전쟁과 같은 전쟁의 시기는 예외다. 이라크 문제를 빼고는 다른 외교정책이 2008년 미국 대선을 좌우하는 관심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리=김수정 기자

스티븐 J 예이츠 (39)
미 외교정책협회 선임연구원. 딕 체니 미 부통령의 외교정책 보좌관(2001~2005년)을 지내며 부시 행정부 1ㆍ2기에 걸쳐 아시아 및 중동 외교정책에 관여했다.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으로도 일했다. 현재 미국ㆍ아시아 지역의 비즈니스와 공공부문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DC 아시아 자문회의(DC Asian Advisory)’ 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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