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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한테 의심받고 배수진 친 강재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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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11일 승부수를 던졌다. 정계 은퇴까지 걸었다.

나경원 대변인의 전언에 따르면 강 대표는 "내가 옆집 ×개도 아니고 그동안 열심히 했는데…"라며 경선 룰에 합의하지 않는 이명박-박근혜 양 주자에게 불만을 터트렸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이날 저녁 기자들과 만나 "이런 상태면 정권교체 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이렇진 않을 것이다"라며 열을 올렸다. 강 대표는 "한쪽에선 '원칙'을 말하면서 자기네와 입장이 다르면 비원칙적이라고 비판하고 다른 한쪽은 시대정신을 말하면서 자기네 편이 아니면 시대정신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며 주자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내가 희생을 해서 당이 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내일 시집가는 딸의 함이 들어오는데 마음이 착잡하다"고 비감한 표정을 지었다.

강 대표가 가장 참기 어려워 하는 부분은 그가 이 전 시장을 밀어주기 위해 중재안을 만들었다는 의심이라고 한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표는 TV인터뷰에서 "(강 대표가 중재안 표결을 강행한다면) 정말 당 대표로서 딴 생각을 갖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 대표는 중재안을 발표할 때 박 전 대표보다 이 전 시장이 훨씬 더 반발할 것을 걱정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대표실 관계자는 "중재안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박 전 대표가 전혀 불리하지 않은데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가령 시.군.구까지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은 수도권보다 지방에 강한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강 대표는 당의 미래를 위해 사심 없이 중재안을 만들었는데도 공공연히 위헌이니 밀약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 되자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전했다. 또 강 대표는 이날 박 전 대표 지지 당원들이 당사 난입을 시도한 것에도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어쨌든 강 대표의 승부수가 적중하려면 ▶중재안이 15일 상임전국위원회를 통과하거나 ▶두 주자가 상임전국위 개최 전까지 새로운 합의안을 만들거나 ▶두 주자 중 한 명이 전격적으로 양보하는 세 가지 경우 중 하나가 성립돼야 한다. 현재로선 어느 것 한 가지도 전망이 밝지 않다. 양 주자가 끝까지 버티면 결국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강 대표가 사퇴할 경우 당헌.당규상으론 이재오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승계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지도부 총사퇴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 상황이 됐을 때 한나라당의 진로는 문자 그대로 '시계(視界) 제로' 상태가 될 것이다. 당권 쟁취를 위해 이명박-박근혜 양측이 이전투구를 벌이다가 각자 딴살림을 차릴 공산도 크다.

강 대표는 양 캠프가 이런 공멸의 시나리오를 맞지 않으려면 한 발씩 물러서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양 캠프는 "우리가 왜 양보하느냐"며 버티고 있다. 한나라당의 앞날에 먹구름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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