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 반란' 한상훈, 정상 문턱서 무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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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상훈 초단(左)은 조한승.박영훈 등 일류 9단들을 연파하며 왕위전 도전자결정전까지 치고올라갔으나 윤준상 6단에 가로막혔다. 그러나 불발로 끝난 초단들의 반란은 언제라도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산천초목마저 벌벌 떨게 했던 '초단들의 반란'을 상승장군 윤준상 6단이 평정했다.

윤준상은 9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41기 KT배 왕위전 도전자결정전에서 초단들의 대장(?) 격인 한상훈 초단을 150수 만에 백 불계로 격파하고 왕위전 도전권을 거머쥐었다. 왕위전 도전 5번기는 25일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시작된다. 불과 두 달 전 이창호 9단을 꺾고 '국수'에 올라 바둑계의 신흥 강자로 등장한 윤준상 6단이 이번엔 이창호의 '왕위'를 향해 칼날을 겨눴다.

8일 벌어진 4강전 때만 해도 초단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올해 겨우 프로 면장을 받았으면서 17승2패의 놀라운 전적을 보이며 전속력으로 정상을 향해 질주해 온 한상훈 초단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박영훈 9단마저 쓰러뜨리며 끝내 도전자 결정전까지 진출한 것이다. 박영훈은 후지쓰배 세계대회 우승자이고 한국랭킹 4위며 세계를 통틀어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사다. 그런 박영훈이 흑을 들고 초반부터 밀린 끝에 대마가 잡히며 무너지자 인터넷에선 '초단 혁명'이란 언사마저 등장했다.

한상훈은 8강전에서 랭킹 5위 조한승 9단을 꺾었고 준결승에서 4위 박영훈마저 꺾었다. 최강의 입신(入神.9단)들을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며 도전자결정전에 나선 한상훈의 모습은 마치 수도 입성을 눈앞에 둔 혁명군의 모습과 흡사했다. 같은 날 윤준상은 이성재 8단을 누르고 결승에 올랐다.

이튿날 아침 10시, 윤준상 6단과 한상훈 초단이 도전권을 놓고 마주 앉았다. 지난 41년 왕위전 역사에서 이런 충격적인 모습은 처음이었다. 한쪽은 기세 높은 신예로 불과 20세에 국수가 된 인물. 다른 한쪽은 오랜 좌절 끝에 프로 입단 테스트를 간신히 통과했으나 불과 3개월 만에 한풀이라도 하듯 바둑계를 뒤흔들어 놓은 19세 초단(한상훈은 지난해 12월을 넘겼으면 나이 제한에 걸려 프로 입문이 불가능할 뻔했다).

한상훈이 세상을 뒤엎으려는 혁명군 대장이라면 윤준상은 기존 바둑계가 방어를 위해 내놓은 마지막 카드로 비쳐졌다.

흥미진진한 승부였으나 피나는 격전은 없었다. 승부는 의외의 곳에서 단 한 수로 결판나고 말았다. 상변에 뛰어든 흑이 한 수 머뭇거리는 사이 백이 양쪽을 집으로 굳히며 그대로 승세를 결정지은 것이다.

윤준상은 "한상훈과는 첫 대결이었으나 그가 강하다는 것은 기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부담스러운 승부였는데 의외로 초반에 우세를 잡게 돼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무적 초단'이란 별명마저 얻은 한상훈의 이미지로 볼 때 너무도 허무한 패배였다. 왕위전을 무대로 펼쳐졌던 초단들의 반란은 결국 불발로 끝났다. 그러나 이들이 만들어낸 숱한 신화들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박치문 전문기자

*** '황소걸음' 흑59가 패착

백이 상변을 넓혔을 때 즉각 57로 뛰어든 수는 시기상조의 느낌이 짙다. 흑?의 강력한 사두(蛇頭)가 중앙을 지배하고 있어 상변은 큰 집이 될 수 없는데 침착하기로 소문난 한상훈이 왜 이 수를 서둘렀는지 모르겠다. 이어서 59의 한 칸이 너무 무겁고 느슨했다. 큰 승부에 몸이 굳었던 나의 지난날이 떠오르는 장면. 59는 적진인 만큼 A로 달려 빠르게 안정을 도모하는 게 현실적이다. 60으로 철주를 박고 62.64로 공격, 양쪽을 모두 집으로 굳힘으로써 백은 일거에 우세를 확보했다. 서로 긴장한 탓인지 큰 접전은 없었으나 이 대목에서 소리없이 승부가 났다. 백은 선수를 잡아 하변의 요충마저 점령해 순풍에 돛을 달게 됐다.(해설 윤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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