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역조 바로잡기의 허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일 무역불균형 시정을 위한 구체적 실천계획을 마련할 목적으로 26일부터 서울에서 열린 양국간 회의는 결국 구체성 있는 방안을 채택하지 못한채 난항만 계속하고 있다.
양국은 지난 1월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폭을 크게 줄여갈 수 있는 세부계획을 이달말까지 제시하기로 약속했다며 그에 따라 한일 무역산업기술 협력위를 구성했으나 이번에도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의례적인 의견교환만이 또 되풀이됨으로써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일간 무역불균형과 산업기술협력 문제는 양국 정상회담에서 제기되어 실천계획을 마련하는 시한까지 못박았끼 때문에 이번만은 어떤 결실이 있을 것으로 기대됐었다.
실천계획의 주요 항목으로 거론되고 있는 산업과학기술협력재단 설립이나 한국상품의 대일시장확대,기술이전 환경의 개선문제 등에 대해서 한국은 정치적으로 접근해왔다. 이에 대해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자처하는 일본은 지나친 경제적 논리로 대응함으로써 회의는 개미쳇마퀴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대일 무역역조를 배경으로한 한국측의 강력한 기술협력 요구에 대해 일본측은 어디까지나 상업 베이스에서 처리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라는 냉정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측은 한일경제협력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역사적인 시각에서 다루려한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대응력이 강한 일본의 협력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보다 일관된 경제논리를 개발하고 그 뒤에서 정치·문화 등 각 분야의 협의체제를 통해 일본의 대한 투자분위기를 개선하는게 낫다.
양국간 무역불균형·기술이전 문제는 이미 30년전부터 논의돼왔으나 그동안 얼마나 진전이 있었는가. 국익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일본문제를 다루기보다 정치적·감정적이었으며,또 일본학의 연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양국간 각 분야의 대화도 원활하지 못했다.
일본은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경제협력에 관한 한국측 요구가 논리적으로 그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는데다,또 이른바 혐한분위기 때문인지 더욱 철저한 「경제적 대응」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 늘 한국과 반대되는 방향에서 논의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도 대일 무역적자와 관련해 경제외적 논리로 일본을 압박했지만,일본은 이에 비교적 「협조」해왔다. 때문에 대한 경제협력문제도 일본은 냉정한 경제논리 뿐 아니라 공동번영이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에 대해서까지 덤핑공세로 대응하며 그것이 국제시장에서 빚어지는 경쟁력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독선이고 횡포다.
한국 정부가 가장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산업과학기술협력 재단설립에 대해 일본은 보다 성의를 보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이제는 양국이 경제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는 기반조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