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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자동 번역 … TV 언어장벽 없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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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의 뉴스 앵커가 말하는 내용이 자동 통·번역 기술에 의해 실시간으로 영어 자막 처리되고 있다.

지난달 13일 미국 뉴욕시 근처 소도시인 요크타운 하이츠의 IBM 웟슨연구소. 자동 통.번역 시스템을 개발한 살림 루코스 박사의 컴퓨터 모니터에 아랍권 최대 위성방송인 알자지라의 이라크 정세 보도가 나왔다. 방송 앵커가 아랍어로 말할 때마다 모니터 아래 쪽에 실시간으로 영어 번역 자막이 나왔다.

미래 기술 연구의 대표 주자인 웟슨연구소가 개발한 '탤스(TALES.Translingual Automatic Language Exploitation System)'라는 신기술을 적용한 결과다. 탤스는 통.번역사 없이 세계 각국 언어를 실시간으로 다른 언어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다.

웟슨연구소는 현재 아랍어.스페인어.중국어 등을 실시간 번역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자동 통.번역 대상 언어를 늘리기 위해 스탠퍼드대 등 6개 대학과 제휴해 연구 중이다. 또 미국 주요 방송사들과 이의 상용화도 추진 중이다.

루코스 박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CNN의 한국어 더빙 방송 허용 문제가 쟁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어 탤스가 나오면 더빙 작업 없이 미국 방송을 한국 프로그램처럼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에 파견된 미군은 웟슨이 개발한 아랍어.영어 자동 통역 시스템 '매스토(MASTOR.Multilingual Automatic Speech-to-Speech Translator)'를 사용하고 있다"며 "이 기술을 방송에 쓰면 자막 대신 현지어 음성 방송도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검색 사이트인 미 구글도 자동 번역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검색 시장에서 언어 장벽을 허물어 세계 1위 검색업체란 위상을 더욱 다지려는 것이다. 이같이 언어 장벽을 허물려는 노력은 머지않아 세계 미디어 시장을 하나로 묶어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DM.Digital Media)족을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 국경 없는 TV시대 열린다=지난달 중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방송사협회(NAB) 2007' 전시회에서는 지구촌 미디어 시대를 열 각종 기술이 많이 선보였다. 일본 소니는 '로케이션 프리(Location Free)'라는 유비쿼터스TV 시스템을 내놨다. 이를 활용하면 지구촌 어디서나 세계의 TV방송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전 세계를 연결해 주는 인터넷 망을 통해 셋톱박스가 방송신호를 뿌려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 간 유학생이 한국 방송을 보려면 서울 집에 인터넷 선이 연결된 셋톱박스를 설치하고 일본에서는 방송을 시청할 단말기에 그 셋톱박스와 교신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깔면 된다.

인터넷 접속만 되면 PC뿐 아니라 휴대전화.PDA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도 시청할 수 있다. 만약 유비쿼터스 TV에 웟슨의 탤스 기술이 접목되면 세계 각국 방송을 실시간으로 즐기는 게 가능해진다. 국내 유비쿼터스TV 기술 보유업체인 아코지토의 안광호 기술이사는 "세계 각국 방송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시대가 머잖아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 요동치는 글로벌 미디어 시장=핀란드의 세계 최대 휴대전화기업체 노키아는 올해 초 온라인 음악 사이트를 열면서 미국 애플의 음악 서비스 '아이튠스'에 도전장을 냈다. 이에 맞서 애플은 음악 다운로드 기능을 강화한 '아이폰'을 6월께 출시하면서 휴대전화기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글로벌 미디어 시장의 판도가 바뀌면서 미디어 관련 업계 간 영역 없는 전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으로 하나의 단말기로 가급적 많은 콘텐트를 즐기려는 DM족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주문형 비디오(VOD) 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17억 달러였던 세계 VOD 시장이 2010년엔 125억 달러로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BBC는 자사 프로그램을 VOD로 제공하기 위해 11월 '아이플레이어(iPlayer)'라는 서비스를 시작한다. 미국 최대 케이블업체 컴캐스트는 지난해 말부터 극장 상영이 막 끝난 최신 영화를 VOD로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주문형 인터넷TV '하나TV'가 지난달부터 이 같은 VOD 서비스를 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기덕 연구원은 "신기술의 개발과 DM족의 확산으로 미디어업계의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이 가속화할 것"이라며 "미디어의 언어.국경 장벽이 무너짐에 따라 글로벌 제휴는 물론 미디어업체 간 인수합병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표준 장악한 기업이 미디어 시장 주도권 쥔다"
뉴미디어 등장 따라 경쟁 치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에서 "집 안의 모든 전자제품을 하나로 묶어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미디어 기술의 국제표준을 장악한 기업이 미래 가전시장을 이끌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뉴미디어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기업들은 자사 기술을 업계 표준 기술로 인정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모바일TV 기술 분야에선 우리나라의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 이동방송(T-DMB)이 핀란드 노키아의 유럽식 모바일TV(DVB-H), 미국 퀄컴의 미디어플로 등과 함께 경합을 벌이고 있다. 또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놓고는 삼성전자가 인텔과 함께 '와이맥스 에볼루션'을 국제표준으로 내세웠고, 이에 맞서 세계 무선기술 표준화단체 3GPP는 '3G LTE'를, 미국 퀄컴 등은 'MBWA' 등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미국 디지털 방송 시장 공략을 위해 'A-VSB(Advanced-Vestigial Side Band)' 기술의 표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이 기술은 차량 등으로 이동할 때 수신 능력이 떨어지는 미국식 디지털TV 기술인 VSB를 보완한 것으로 건물이나 지형의 장애를 받지 않고 전송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석진욱 박사는 "한국의 인터넷.단말기 등 특정 분야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일부는 표준기술로 채택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는 개별 기술을 모아 종합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기술은 액센추어.IBM 등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만큼 네트워크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UCC등 소비자 참여 미디어 혁명 키워드"
IBM 미디어부문 부사장

미국 IBM의 바니사 나라야난(사진) 아시아.태평양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부문 총괄 부사장은 "혁명이 진행 중인 미디어 업계의 키워드는 '소비자 참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야난 부사장은 IBM 내 미디어 분야 최고 전문가로 미디어기업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전략을 짜는 일을 돕는다.

그는 "앞으로 미디어에서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커질 것"이라며 "세계 최고 검색 사이트인 구글이 UCC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인수한 것은 이런 경향을 보여 주는 실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다가올 미디어 시대엔 '텔레비전(Television)'이 아닌 '텔레센스(Tele-Sense)'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가 단순히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소비자와 감성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라야난 부사장은 또 "기술의 발달로 소비자의 미디어 접촉 기회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며 "미디어 기업들은 재미있는 콘텐트를 소비자와 공유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 공영방송인 BBC를 모범 사례로 들었다. BBC는 인터넷에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모두 공개하는 것은 물론 시청자가 자체 제작해 올린 프로그램도 컴퓨터.휴대전화 등 유.무선 단말기로 내려받아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그는 미디어 기업의 성공 조건으로 ▶소비자의 다양한 성향 파악 ▶UCC의 적극 활용 ▶뉴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인프라 구축 등을 꼽았다. 여기에 경영진의 유연한 대처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디어 컨버전스(융합)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기존 사업 영역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 IPTV 관련 사업에 뛰어든 게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특별취재팀=차진용(팀장).이원호.김원배.최익재.하현옥.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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