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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앙시ㆍ이앙시 그리고 의왕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호 27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오늘 금-찰에 소환됐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전 전 대통령의 위법 사실에 대해 증-확히 규명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두꺼운 글씨는, 전직 대통령의 파렴치에 버금가게, 아나운서들의 뉴스 리딩을 들으며 소름이 끼쳤던 부분들이다. ‘검찰’을 ‘금찰’로, ‘정확’을 ‘증확’이라고 발음하다니…. 일반인들이 대충 알아듣고 넘어가는 발음도 소리에 민감한 사람들에겐 귀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외국어를 배우면서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우리말 발음은 대충 하곤 한다는 점이다. 우리말을 잘하기 위해선 마찬가지로 발음을 정확히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예전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에서 춤 선생이 “서울ㆍ대전ㆍ부산, 찍고!” 하며 댄스를 가르치던 기억이 난다. 올바른 모음 발음도 댄스 스텝이나 마찬가지로 발 대신 혀를 제대로 된 위치(조음점)에 찍어주면 된다. 혀를 입의 앞쪽, 그러니까 앞니의 바로 뒤쪽에 위치시키는 전설모음(前舌母音)의 경우 아래에서부터 ‘ㅏㆍㅐㆍㅔㆍㅣ’ 순으로, 목포ㆍ군산ㆍ서산ㆍ인천 찍으며 올라온다. 입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확실히 크게 벌린다. 후설(後舌)모음은 아래에서부터 ‘ㅓㆍㅗㆍㅜ’로, 부산ㆍ울진ㆍ강릉 순으로 올라간다.

고모음(高母音)은 혀를 찍는 위치가 높은 모음, 저모음(低母音)은 낮은 모음을 말한다. 단음이었던 저모음 ‘ㅓㆍㅕㆍㅝ’가 장음이 될 때 고모음으로 변하게 된다. 이것이 중설(中舌)모음의 최고점에 있는 ‘ㅡ’ 발음의 조음점에 가깝게 되어 금-찰, 으-른, 증-확 등으로 들리게 된다. 우리말 음성 표현에서 격을 나타내는 관건이 되는 고모음 ‘ㅓ:ㆍㅕ:’ 등은 음성미학 측면에서 장음과 함께 중후하고 장중하며 고상한 격을 표현해 준다. 상대적으로 단음과 저모음에선 식물성의 산뜻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고저장단이 교차하며, 말은 멜로디와 리듬을 가진 음악처럼 미감과 탄력성을 갖는다. ‘어린이와 어:른’ ‘여성과 여:당’ ‘사랑과 사:람’ 등을 발음해 보라. 현란한 춤 스텝도 정확히 찍어주면 절도 있고 아름답게 보이듯, 발음도 혀만 제대로 찍어주면 듣기 좋게 바뀔 수 있다. 모든 글자의 높낮이를 외고 살지는 못해도 한두 개의 대표적인 높낮이와 장단음을 정확히 구사하면 격조 있고 품위 있는 말하기의 인상을 주게 된다. 다만 장음과 고모음이 심해지면 징그럽고 늙수그레하게 들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한편 ‘의’라는 글자는 세 가지로 발음되는데, 맨 앞 글자로 왔을 때는 이중모음 ‘ㅢ’로, 뒤에 올 때는 ‘ㅣ’로, 소유격 조사로 쓰일 때는 ‘ㅔ’로 발음된다. 그러니까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나라’는, [궁민에 의사를 존중하는 민주주이에 나라]로 발음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이에 나라]를 위해 투쟁하신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두 ‘의’ 발음을 잘 못한다. 경기도 ‘의왕시’의 발음을 목포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으앙시’로, 부산 출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앙시’로 발음했다. 일차적으로 두 분이 태어나 살아온 지역의 방언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탓만은 아니다. 지역을 막론하고 사람의 습성에는 될 수 있는 한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으려는 게으름, 혹은 절약정신(?)이 있다. 입을 크게 안 벌리고 말하려는 습관, 이중모음을 슬쩍 단모음으로 발음해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습관들을 보인다. 의왕시의 ‘앙’ 발음은 그 절약정신에 해당된다. 몸에 밴 그 절약정신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음가(音價) 하나하나의 정확한 발음에 들인 노력이 ‘말이 잘 들리는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전환할 때, 거기에서 발생할 나의 무지막지한 에너지를 생각해 본다면 좀 쓰시는 게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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