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고 상상하는 환상의 오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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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20면

현대 미술 같다. 색채ㆍ구도ㆍ분위기…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진 무대는 한 폭의 그림이다. 거대한 설치미술처럼도 보인다. ‘이탈리아의 보물’이라 불리는 오페라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77)는 건축가 출신답게 무대를 구축하는 힘이 세다. 빛과 색의 환상적인 운영, 공간을 가지고 노는 발랄한 에너지는 그를 현존하는 최고의 연출가로 올려놓았다.

헨델의 ‘리날도’ 5월 12일(토)~17일(목) 오후 7시30분(14, 16일 쉼)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문의: 02-587-1950

피치가 직접 들고 온 오페라 ‘리날도’는 그의 명성을 확인하게 만드는 2005년 밀라노 ‘라 스칼라’판이다. 국내 초연. ‘리날도’는 헨델이 1711년에 쓴 바로크 오페라로 십자군전쟁을 다룬 타소의 ‘예루살렘 해방’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십자군 영웅 리날도와 그의 연인 알미네라 등 두 쌍 남녀의 애정관계가 극의 뼈대다. 얽히고설킨 사각관계가 이러쿵저러쿵 흘러가다 잘 풀린다는 뻔한 얘기다. 그러니 스토리보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볼거리가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카스트라토(변성기 이전에 거세해 소년 목소리를 지닌 성년의 남자 가수)의 등장이다. 바로크시대에 역할은 모두 여성의 고음역을 낼 수 있는 카스트라토가 맡았다. 영화 ‘파리넬리’에 등장한 카스트라토가 불러 유명해진 아리아 ‘울게 하소서’가 ‘리날도’에서 알미레나가 부르는 느리고 장중한 ‘라멘토’다.

피치는 ‘리날도’를 장중함과 허장성세의 이중 구조로 만들었다. 주인공들 은 걷지 않고 항상 말이나 배를 타고 등장해 노래하며 큼직한 망토와 요란한 의상으로 부풀려져 있다. 망토를 흔들거나 주인공이 탄 발판을 미는 보조 출연자까지 등장할 정도다. 거대한 허세 속에 시대의 특성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피치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환상 체험을 건넨다. 오감을 열고 그 마술을 받아들이는 이에게 상상의 세계가 열린다. ‘즐겨라, 그리고 꿈꿔라’가 피치의 오페라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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