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레일 위의 호텔' 달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자작나무의 은빛 껍질에 눈이 부시고, 광활한 타이가(침엽수림) 지대가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곳.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초호화 유람 열차가 등장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와 극동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세계 최장 1만㎞ 철길을 오갈 유람 열차 '즐라토이 아룔(황금 독수리)'호가 6일 첫 운행에 들어간다. 러시아 철도공사와 영국 철도 여행 전문업체 'GW 트래블'사가 공동 운영하는 이 열차는 이날 모스크바에서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싣고 출발한다. GW 트래블은 러시아와 중국.캐나다 등에서 열차 관광 사업을 하고 있는 전문업체다.

블라디보스토크까지 14일이 소요된다. 통상 7일 걸리는 일반 시베리아 횡단 열차보다 운행 시간이 두 배나 길다. 철도 주변의 주요 도시들과 바이칼 호수 등을 관광하면서 가기 때문이다. 요금은 객실 등급에 따라 8000~2만 달러(약 750만~1850만원)에 이른다. 가장 싼 것이 일반 횡단 열차 요금(400달러)의 20배를 넘는다. 열차 내 시설은 '레일 위의 호텔'로 불릴 만큼 호화판이다. 전체 19량으로 구성된 열차에는 객실 12량 외에 식당.바.조리실.세탁실.이발소.응급실 등으로 이용되는 차량이 붙어 있다.

객실은 넓이에 따라 금실(7.5㎡)과 은실(5.5㎡) 두 등급으로 나뉘지만 내부 시설에는 차이가 없다. 모든 객실에는 널찍한 2인용 침대와 샤워 시설, 에어컨, 평면 TV,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 등이 완비돼 있다.

식당칸에서는 캐비아(철갑상어알)와 보드카를 곁들인 호텔 수준의 전통 러시아 음식이 제공된다. 승무원은 모두 영어를 할 줄 안다. 여행 중 발생할 환자를 돌볼 의사로 영국인을 채용했다.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다. 운영사 측은 "러시아 상류층은 물론 영국.미국.호주.뉴질랜드 등에서 오는 외국 관광객들이 열차의 주요 고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람 열차는 시베리아 기온이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는 혹한기를 피해 5~9월 5개월 동안만 한 달에 한 번꼴로 운행된다. 운행사 측은 두 대의 열차를 투입해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노선뿐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 노선도 가동한다. 모스크바행 첫 열차는 18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다. 열차는 중간에 예카테린부르크.노보시비르스크.이르쿠츠크.울란우데.바이칼호.하바롭스크 등에 기착해 관광지들을 둘러본 뒤 다시 여행을 계속한다. 요금에는 이 모든 비용이 포함됐다.

러시아 철도공사와 GW 트래블사는 7년 동안 2500만 달러를 들여 황금독수리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GW 트래블 사장 팀 리틀러는 "7~8년이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1891년에서 1916년 사이에 건설됐다. 이 철도 위를 달리는 보통의 횡단열차는 샤워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열악한 식사, 객실에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낯선 승객 등으로 불편이 컸다.

유철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