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융은 이번으로 끝내야 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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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빚더미가 6조원을 넘은 서울소재 3대 투신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2조9천억원에 이르는 연리 3%의 한은특별금융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또 3천억원의 국고여유자금도 별도로 공급된다.
정부정책의 불신에서 빚어진 일부지방 투신사에서의 예금인출사태와 3대 투신사의 부실규모 확대에 따른 증시상황 악화로 이같은 방안이 서둘러 취해진 느낌이다.
정부의 조치는 한은 특융에 대한 국회동의를 받는 절차를 마련하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고 여유자금도 지원한다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과거와 다른 여론의 수렴과정과 재정 금융에서의 분담 등 모양새를 갖추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까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 정부의 실책을 풀어나가려는 발상을 계속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은 우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앞으로는 어떤 정부도 한은의 특융이라는 비상수단을 동원하려고 시도해서는 안되겠다. 3공화국은 지난 72년 8·3사채동결때 특융을 통해 시중은행의 수지악화를 막으려 했고,5공화국은 부실 해운업 및 건설업체 정리를 떠맡은 은행에 역시 같은 방법으로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려 했다. 6공화국은 당시 주가의 급락추세를 정권의 위기상황으로 해석해 역시 특융이라는 최후의 수단에 의지했다.
어느 정권이건 급하면 전가의 보도로 「특융」을 끌어쓰는 습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정권이 경제정책의 중대한 실책을 결국에 가서는 특융으로 커버하려는 우를 저질렀으며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했다.
특융은 이제 6공을 마지막으로 끝나야 한다. 내년 초에 들어설 새 정부도 혹시나 이같은 수단에 안주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방패막이를 강구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은의 특융은 관계법과 규정에 있는 절차를 무시하며 집행되었다. 89년의 12·12주가부양조치는 사전에 중앙은행 관계자도 몰랐으며 당시 부총리와도 협의된 바 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국회에서 그 방법문제를 심의한 적은 더구나 없었다.
정부가 탈법적인 경제조치를 취한 결과 국민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뒤따라야 또 다른 실수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경제조치는 결국 적법절차에 의한 것이어야 국민의 신뢰가 조성된다.
12·12조치의 결과 우리는 정부의 정책여하에 따라 개별기업적 성격의 투신사 경영이 하루아침에 정상에서 부실로,부실서 다시 정상으로 뒤바뀌어 가는 현상을 목격했다. 정부의 편의성이 기업에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다.
대통령 후보들은 정부의 주요정책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최근의 정부정책 결정과정을 통해서 중요한 학습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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