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창혁의 배짱이 낚은 승리|왕위전 7번기 종합 관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안개 자욱한 호숫가에서 이창호5단이 무심의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천기와 대세를 헤아리는 밝은 눈으로 안개 저쪽을 꿰뚫어보며 머리 속으로는 조용히 신산의 주판알을 굴린다.
배짱 좋고 힘찬 유창혁 5단이 풍운과 비바람을 몰고 온다. 호수의 물결은 거세게 일렁거리고 뇌성이 진동한다.
이창호의 혜안은 유창혁이 일으킨 조화의 이면을 집요하게 쫓고 유창혁의 풍운은 더욱 강렬해진다. 묘계가 백출하고 암중으로 정신력이 불꽃처럼 격돌한다.
3월17일 시작되어 5월20일 유5단이 4승3패라는 극적인 스코어로 승리한 제26기 왕위전 도전7번기는 시종 이런 내공싸움의 연속이었다. 일단 「계산서」가 나오면 이창호를 꺾을 수 없다고 본 유창혁은 7국 모두를 초반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집짓기」는 패배의 지름길이기에 줄기차게 싸움을 걸어 계산을 방해했다. 강수를 던져놓고 위험을 무릅쓸 텐가, 한발 물러설 것인가 하고 위협(?)했다. 이것이 유5단의 전략이었다.
이창호는 모르는 길을 가고싶지 않은 사려 깊은 청년이기에 조금 타격을 입더라도 끈기 있게 바람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초반의 손해와 고통을 감내하며 길이 보일 때까지 참고 또 참은 다음 그때부터 추격을 시작했다.
이리하여 한국바둑계 「최고의 공격수」와 「최고의 추격자」는 제6국까지 성공·실패를 나누어 가졌다. 운명의 제7국에서 돌연 이창호의 무심이 흔들렸다. 그는 기다리지 않고 유5단의 풍운 속으로 돌입, 정면으로 충돌했다.
왜 기다림의 이창호가 끝까지 기다리지 않았을까. 결승국이 끝난 뒤 조훈현9단·서봉수9단등 20여명의 고수들은 한결같은 의문에 휩싸였다. 왜 강태공의 무심을 터득했다는 이창호가 이날만은 기다리지 않았을까.
유5단은 제1국에서 초반에 예상외의 신수를 들고나와 이5단의 의표를 찔렀다. 이 바둑은 패망선이라 불리는 제2선에서 묘수와 허망한 실수를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일찌감치 이5단의 허리가 부러져 추격이 불가능했다. 유창혁이 회심의 묘착으로 완승한 바둑.
제 2 ,3국에서 대세를 보는 이5단의 밝은 눈이 유5단의 실족을 포착, 뒤집기를 성공시킨다.
제3국이 벌어졌던 4월15일 난데없이 우박이 쏟아졌다. 국면은 바야흐로 숨막히는 승부처. 이5단이 형세반전의 필살의 한 수를 던졌고 우박소리와 함께 유5단의 패착이 떨어졌다.
이창호의 저력이 조용히 되살아나면서 1승2패로 유5단이 몰리자 사람들은 『이창호의 방패는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데 유창혁 창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벼랑에 몰린 유창혁은 제4, 5국에서 초반에 충격적인 강타를 터뜨려 기선을 잡은 뒤 이창호의 추격을 잘 막아내 연승을 거둔다. 이5단이 끝없이 때를 기다렸으나 유5단은 예전에 볼 수 없던 강인한 정신력으로 고통스런 종반을 견뎌냈다. 이리하여 유창혁이 3승2패.
제6국에서 유5단이 끝을 내지 못하면 필시 이창호가 이긴다고 프로들은 전망했다. 프로들에게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울릴 정도의 두려움을 심어놓은 이창호의 위력은 『결승국은 제7국이 아니라 제6국』이라고 말하게 만든 것이다. 이 6국에서 이5단은 간발의 차로 밀렸으나 종반에 유5단의 무리수를 응징, 가벼운 한판승을 거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마지막7국이었다. 초반이 팽팽하게 어울리자 모두들 『창호가 이긴다』고 했다. 그러나 이창호는 형세를 비관하여 자폭에 가까운 저돌성을 보였다. 비관파 이창호(신중한 사람은 대개 형세 비관 파다)와 낙관파 유창혁이 단판승부에 임하자 사태가 뒤바뀌었다. 예측은 철저히 빗나갔다. 유창혁의 배짱이 큰 승부에 한몫 했고 거기에 흔들려 이창호는 낚싯대를 거두고 유창혁의 풍운 속으로 돌진하다 자멸했다.
대국이 끝났을 때 프로들은 말했다.
『창호도 역시 사람이구나.』 체력이 부족한 유창혁이 내공싸움에서 밀려 3대3이 되자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싶었다. 그러나 막판에 마치 산맥처럼 웅혼했던 이창호의 자세가 갑자기 허물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은 하나의 이변이었으며 이창호가 신비로움을 거부하고 희로애락을 아는 17세 청년임을 스스로 드러낸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했다. 【박치문 기자·그림 박기정 화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