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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말을 타고 들판을 노니는 유쾌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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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29면

국내에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2004년 작 ‘사이드웨이(Sideways)’라는 영화 덕에 더 유명해진 와인이다. 와인 병을 들고 들판을 질주하던 사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와인과 사랑에 흠뻑 취해서 영상을 즐긴 팬이라면 아무리 와인을 모르는 이라도 한잔 생각이 간절했을 영화다. 와인 산지에서 일어나는 네 남녀의 애정만세가 한잔의 와인처럼 펼쳐진다. 이 영화가 개봉된 뒤에 와인 애호가가 꽤 늘었다는 이야기가 거짓은 아닌 듯싶다. 남자 주인공이 애지중지 아끼는 와인이 바로 ‘슈발 블랑’인데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니 와인 또한 주인공인 셈이다.

와인 시음기-샤토 슈발 블랑 1995

‘샤토 슈발 블랑’은 프랑스 생테밀리옹(St Milion) 지역의 A등급(Premier Grand Cru Classe) 와인이다. ‘슈발 블랑(Cheval Blanc)’이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흰 말’이라는 뜻. 세컨드 와인으로는 ‘르 프티 슈발(Le Petit Cheval)’이 있다.

1995년 ‘샤토 슈발 블랑’은 좋은 빈티지에 잘 만들어진 와인이다. 필자는 얼마 전 지인의 생일선물로 이 와인을 가지고 가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포도주 한 병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값어치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백마’란 말 그대로 우리는 흰 말 한 마리를 타고 들판을 노니는 듯 유쾌했으니까.

‘슈발 블랑’의 1995년 빈티지는 멀로 50%와 카베르네 프랑 50%를 블렌딩해서 만들어졌다.루비 컬러를 지니고 있고 아직 새디먼트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원래의 색상이 제법 빠져서 숙성기에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디캔터에서 두 시간 반 정도의 브리딩 이후 시음에 들어갔다.

잔을 들자 베리 플럼 카시스 블랙베리 위주의 농축된 과일 캐릭터들이 살아나며 뒤를 이어서 에소프레소 다크 초콜릿 트러플 등의 향들이 피어오른다. 매우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향기가 참 아름답다. 밀키하면서도 스파이시한 이 느낌…코끝이 아릿아릿하다.
입 안에 실크를 펼쳐놓은 듯한 부드러운 타닌이 대단히 인상적이며 적절한 애시디티와 잔잔하면서도 길게 가져가는 피니시가 돋보이는 와인이다. 밸런스 또한 매우 안정적이며 보디 감 역시 뛰어나다.

마시기 좋은 적정 기간은 지금부터 2025년 정도까지로 보인다. 5년 정도 뒤면 최고의 맛을 뽑아낼 듯하다. 지금 시음하신다면 두 시간 반 이상의 브리딩이 꼭 필요하다. 아무리 급하시더라도 꾹 참고 3시간쯤 디캔터에 재워두시길.

‘슈발 블랑’ 같은 경우 좋은 빈티지는 20년 이상의 숙성이 필요하다. 애버리지 빈티지라 해도 10년 정도 숙성해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와인이다.
추천 빈티지는 1982·85·86·90·95·98·2000·2001년 등이다. 잘 어울리는 음식은 송아지 요리나 부드러운 육질을 지닌 쇠고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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