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7성 호텔이 선택한 마에스터의 자부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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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31면

세계 최초로 국제 공인을 받은 7성(星) 호텔인 밀라노 ‘타운 하우스 갤러리아’. 원하는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제공한다는 이 호텔은 뉴스 토픽감으로 손색없다. 관련 잡지의 기사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이 호텔에서 사용되는 명품 리스트에 눈이 멈췄다. 전자제품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 필기류는 독일의 파버 카스텔사 제품이었다.

윤광준의 생활 명품 이야기- 파버 카스텔 필기구

왜 관심을 갖느냐고. 그 리스트 가운데 내가 가진 제품이 두 개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고 명품으로 인정받은 제품의 소유 기쁨을 우회적으로나마 확인했다고나 할까. 기회를 보아 타운 하우스 갤러리아를 찾을 명분 하나는 건진 셈이다.

독일의 파버 카스텔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필 회사다. 현재 쓰고 있는 육각 연필을 최초로 고안했고 환경친화적 생산 방식을 고집하는 연필의 역사를 이끈 공로도 동사의 업적이다. 이제 명품 필기구를 만드는 관록의 브랜드가 된 파버 카스텔이다. 최고의 호텔이 선택한 최고의 필기구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작년 뉘른베르크에 있는 파버 카스텔 본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파버 카스텔은 수백 년 된 고성(古城)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연필 하나로 귀족 작위를 받은 파버 카스텔가의 자부심과 전통으로 지켜온 성은 그 자체의 상징으로 우뚝했다. 그 안에서 평생 연필 하나만 만들어온 노(老) 마에스터들이 일한다. 그들의 존재가 바로 쓰고 있는 연필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파버 카스텔 그라폰 퍼펙트 펜슬은 내 작업의 중요한 도구다.

연필은 아무래도 나무로 만든 것이어야 제격이란 믿음, 아울러 휴대의 문제까지 해결한 편의성, 부드럽게 써지는 필기의 감촉,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단순해 보이는 연필에 246년이란 시간이 농축되어 있다.

멀리 위대한 문호 괴테, 빈센트 반 고흐, 고 케네디 대통령이 애용하던 연필. 최근엔 유럽 귀족과 국제적 명망가들의 애장품이 된 파버 카스텔이다. 그라폰 퍼펙트 펜슬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고 싶은 내재된 욕망의 최면 방법이다.

무릇 좋은 물건의 효용성은 그것으로 만들어낸 생산물의 결과로 증명된다. 물건은 물건만으로 좋음을 말하지 못한다. 물건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은 사용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흘려버리지 않는 메모 습관을 들여 준 파버 카스텔 연필로 더 좋은 글을 써야 한다. 자신을 위해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명품은 그를 지닐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비밀을 알려준다. 명품의 진정한 가치는 지향의 극점을 향하는 인간정신인 것이다. 최고의 물건을 사용한다는 것은 더 높은 세계와 경지의 자각을 일깨워준 스승과 함께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좋은 물건은 인간을 가르치고 삶의 해답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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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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