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티드 베일 - 결혼이란? 사랑+의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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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14면

인생은 많은 선택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 혹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 하는 선택을 ‘포지티브(positive)’한 선택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서, 혹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하는 선택은 ‘네거티브(negative)’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택이 언제나 예상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후자의 경우 최악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대안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펼쳐지는 경우가 있다. 서머싯 몸의 소설을 원작으로 존 커란 감독이 만든 ‘페인티드 베일’은 두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통해 관계에 있어 ‘네거티브’한 선택이 어떻게 우리의 눈을 가리는지를 보여준다.

★★☆ 감독:존 커란 주연:나오미 와츠ㆍ에드워드 노튼 러닝타임: 124분

1920년대 초반 영국의 한 사교파티에 참석한 월터(에드워드 노튼)는 계단을 내려오는 키티(나오미 와츠)의 모습을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한다. 키티는 월터에게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않았지만, 나이가 차도 결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무시하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중국에서 세균학자로 근무하는 월터를 따라 상하이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키티는 외교관인 찰스와 불륜에 빠진다. 관계를 눈치챈 월터는 콜레라가 창궐한 지역인 메이탄푸에 근무를 자원하고, 키티를 데려간다.

중국이라는 타자와 끔찍한 죽음을 매일 대면해야 하는 과정에서 월터와 키티 사이의 냉랭한 기운은 동질감으로 변모한다. 그들은 ‘우리는 어쩌면 서로에게 없는 것만 찾으려고 애썼는지도 모르겠다’며 처음부터 자신들의 사랑이 서로를 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환상에 함몰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지 반성한다. 영화에서 진짜 연애는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연애와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나 현대적 해석을 발견하기는 힘들지만, 사랑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과 그림 같은 풍광을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감상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영화다.

키티가 봉사하는 수녀원의 원장 수녀가 들려주는 “사랑과 의무가 하나가 된다면 축복받은 일이지”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주제를 가장 인상적으로 압축한 한마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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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닌 김지미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과 국문학을 전공한 뒤 문학과 접목한 영화 읽기와 쓰기를 꿈꾸는 영화평론가입니다.

★표는 필자가 매긴 영화에 대한 평점으로 ★ 5개가 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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