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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이미 해외로 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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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22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40대 중반의 신모 사장은 50억원대 자산가다. 그는 지난해까지 집ㆍ땅ㆍ오피스텔 등으로 30억원, 주식 직접투자로 20억원 가량을 굴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 사장은 올들어 포트폴리오를 활발히 교체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은데다 국내 증시도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주식 자산을 둘로 쪼개 10억원은 전문가에게 주식투자를 맡기는 자문형 랩 상품으로, 10억원은 해외펀드로 과감하게 돌렸다. 부동산도 일부 처분해 해외부동산펀드로 옮길 계획이다.
 
해외펀드가 국내펀드 앞질러
신 사장처럼 부자 5명 중 1명은 올들어 ‘투자 보따리’를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나라 안팎의 투자환경이 급변하자 발빠르게 대응에 나선 것이다. 부자들의 재산목록에서 부동산 비중은 57%로 나타났다. 최근 통계청은 한국인 전체 자산을 조사한 결과 부동산 비중이 평균 77%에 이른다고 밝혔다. 상위 20% 소득자의 부동산 비중도 78%였다. 그러나 중앙SUNDAY 조사 결과 알짜배기 부자 1만여명의 부동산 비중은 이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눈에 띄는 건 해외펀드의 약진이었다. 자산 중 해외펀드의 비중(13%)이 국내펀드(10%)를 눌렀다. 국내 주식 수익률은 시원치 않았지만 중국ㆍ베트남 같은 해외증시가 돋보였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런 흐름이 두드러졌다. 이번 조사 결과 현재 부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투자처 역시 해외펀드(75%)로 나타났다. 강남ㆍ북을 가리지 않고 톱에 올랐다. 요즘 해외펀드 투자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60%가 부동산 줄이고 싶다
부자들의 골칫거리 1순위는 부동산이었다. 부자 10명 중에서 6명은 부동산 자산을 줄일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남 부자들의 비율(73%)이 높았다. 이유는 뭘까. 신한은행 PB 서울파이낸스센터의 송민우 팀장은 “부동산만 갖고 있으면 무조건 돈이 된다는 믿음이 점차 퇴색하고 있는 것 같다”며 “상담 중 부동산 매각 얘기를 꺼내는 부자들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국민은행 분당 PB센터의 천창현 팀장은 “집을 팔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고 실제로도 팔고 있다”며 “연말에 정리한 고객도 꽤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워낙 많이 오른데다, 종합부동산세 같은 보유세 강화와 양도세 중과 등으로 이런 흐름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산이 30억원을 넘는 부자들의 절반가량은 여전히 금융상품보다는 부동산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자들 중에서도 초고액 재산가들은 부동산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아파트 대신 상가와 땅으로
아파트의 대타(代打)로 부상한 건 상가와 땅이었다. 앞으로 투자하고 싶은 부동산을 묻자 ‘상가’가 1위(43%)에 올랐다. 특히 강북ㆍ강서 부자들이 상가를 많이 주목하고 있었다. 상가는 임대료를 통해 대출이자 등을 해결할 수 있는데다 증여할 때 재산가액 자체가 적게 평가되는 경우가 많아 부자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가에 이어 신도시 예정지 같은 개발지역 ‘땅’이 2위(30%)를 차지했다. 분당ㆍ일산 쪽 부자들이 유망한 토지에 관심이 많았다. 반면 부촌 1번지인 강남의 부자들은 해외부동산(46%)에 가장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정부의 해외부동산 투자 완화대책 등과 맞물려 그만큼 재빠르게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는 얘기다.
 
지구본 껴안고 24시간 고민
이번 조사에선 부자들이 세계시장을 머릿속에 그리며 포트폴리오를 짜는 시대가 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자들은 가장 불안한 재테크 변수로 ‘국내경기 침체’(28%)를 꼽았다. 다음은 ‘해외경제 하강’(25%)이었다.

그러나 엔-캐리 자금청산 등 국제유동성 변화(15%), 엔화ㆍ달러 가치 변동(5%) 등을 더하면 해외변수에 대한 우려가 국내를 압도했다. 특히 강북보다 강남의 부자들이 해외 경제동향에 더 민감했다. 신한은행 PB 강남의 박기섭 팀장은 “펀드ㆍ부동산 등으로 나라 밖에 돈을 묻어둔 부자가 부쩍 늘었다”며 “요즘처럼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선 밤잠을 설치기 일쑤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강남의 거액 부자들을 중심으로 미술품이나 골동품 등의 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PB 팀장들은 전했다. 재테크의 역사를 보면 투자 게임이 막바지에 이를 때 고수들은 희귀성이 강한 미술품 등을 놓고 한판 승부를 겨루곤 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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