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그가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몰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호 20면

김창완(54)씨는 끈질기다. 뭐든 하고픈 건 어디서나 오래 한다. 텔레비전을 켜도, 라디오를 틀어도 그가 늘 거기 있다는 건 참 대단하다. 의학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가증맞은 병원 부원장을 능청스레 연기할 때도 돌아서면 가수 김창완, 라디오 진행자 김창완, CF 배우 김창완이 한 몸 속에 켜켜로 박혀 있었다. 시금털털한 ‘김창완 아저씨’는 하루에도 몇 꺼풀 자기변신으로 물구나무를 선 뒤, 새벽녘 제 방에 들어가 기타 줄을 튕기며 또 다른 제 속내를 불러낸다.

김창완의 빈티지 콘서트 “김창완입니다” 5월 3일(목)ㆍ4일(금) 오후 8시 호암아트홀 문의: 02-522-9933

그가 1977년 록밴드 ‘산울림’에서 ‘아니 벌써’를 외쳤을 때, 유신 말기 암울했던 한반도는 펄쩍 뛰어올랐다. ‘산울림’은 딴딴하게 얼어붙었던 대한민국을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것’의 에너지로 흔들었다. ‘산울림’ 정신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였다. 김창완씨에게 음악을 발표하는 것은 사고의 결정체가 아니라 사고의 시작이었다. ‘산울림’ 음악은 한마디로 고착되려고 하지 않는 정신이다.

지난해 ‘산울림’ 탄생 30돌 기념 콘서트를 하고 나서 그는 더 외로워졌다. 외로움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 외로움을 널리 전파하려는 것이 이 콘서트의 뜻이다. 흔히 공연장에서 풍부한 출력을 위해 쓰는 ‘PA(Public Address)’ 음향 기기를 쓰지 않고, 해묵은 진공관 앰프를 들여놨다. 30년 내공으로 닦인 가수 김창완의 몸이 이미 진공관이니, 거기서 흘러나오는 넉넉한 소리를 더 따뜻하고 섬세하게 울려 내줄 진공관과 짝을 맞추는 셈이다.

‘산울림’이 내놨던 곡을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등의 악기 편성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클래식이냐, 대중음악이냐는 편가르기는 그에게 의미가 없다. 음악은 음악일 뿐. ‘인간적인 소리’ ‘외로움을 아는 음악’이 더 중요하다.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게, 머리 시키는 것 따르는 것보다 탈이 없다”는 얘기도 그의 음악을 따라 흐른다.

김창완씨의 곡은 과거와 현재, 어른과 아이를 뒤섞는다. ‘꼬마야’ ‘개구쟁이’ ‘청춘’ ‘회상’이 한 무대에서 세대를 이어가며 만난다. 그곳에서 잠시 “내 마음의 유리가 깨져서 에고가 해체되는 순간,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열릴 것”이라고 그는 즐거워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