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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민간 정부 들어서면 도약" 부푼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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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프놈펜은 1993년을 살고있다.
바쁜 사람도, 한가한 사람도 모두 바쁘고, 느긋한 이유가 1993년을 기다리고 준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놈펜 사람들에겐 1993년은 기다림이자 희망이다.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광활한 캄보디아 평원을 가로지르며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프놈펜 인근의 풍경은 월남전 당시 미군폭격으로 만들어진 분화구 같은 폭탄 자국이 숭숭한 논밭의 상흔 외에는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특히 프놈펜은 대양의 한가운데 나지막치 떠 있는 외딴섬처럼 한가롭기만 했다.
햇빛이 피부에 따갑게 부닥치는 포첸통 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리는 순간 자그마한 한국 중소도시 기차역 같은 공항 건물 옆에 유엔 마크가 선명한 군용 수송기 및 헬리콥터 10여대가 여행객을 맞으며 이 나라의 오늘을 설명하고 있었다.
건물 전면 중앙에는 망명 12년만에 귀국한 노로돔 시아누크공의 대형 초상화가 13년 내전의 종식을 증명하듯 변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정치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캄보디아의 오늘을 대표하는 유엔 캄보디아 과도정부(UNTAC)의 유엔 캄보디아 선발대(UNAMIC)와 캄보디아 최고국가회의(SNC)의장 시아누크는 캄보디아 인이 기다리고 있는 1993년의 주역들이다.

<군인 31만 무장해제>
1993년은 캄보디아가 오랜 내전을 완전 종식하고 UNTAC와 SNC가 주도, 자유 총선을 실시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해다.
프놈펜에서 만난 대학교수·기업인·학생·공무원·연예인 등은 캄보디아의 현재 상황을질문할 때마다『1993년이 돼봐야 안다』고 대답했다.
지난89년 베트남군이 11년 지배를 끝내고 완전 철수한 이후 훈센 프놈펜 정부와 시아누크·손산·키우삼판 등 4개 파가 91년 10월 파리에서 평화협정에 서명, 캄보디아는 오랜 내전에서 벗어나 유엔에 나라의 장래를 맡겼다.
유엔은 현재 2만 명의 평화유지활동(PKO)병력을 파견, 다음달 13일부터 각파 군대 44만명 중 31만 명을 무장해제하고 이들을 해산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유엔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은 UNTAC가 제반 정국을 장악, 93년 총선 때까지 파벌간 무력충돌을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하는데 있다.
시아누크가 이끌고 있는 SNC는 4개 파가 참여, 내전 당사자들이 평화정착 노력에 공동책임을 지는 구심적 기구다.
5층 높이 건물이 키를 견주듯 나란히 줄지어선 프놈펜 중심가는 무수한 자전거·모터사이클이 분주히 질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프놈펜과는 다른 모습을 이루고 있다. 프놈펜 시가는 89년 베트남군 철수와 훈센 정부의 사회주의 독재완화, 그리고 유엔군의 진출로 나날이 모습이 바뀌고 있다.

<구멍가게 부쩍 늘어>
시가지 곳곳에선 이미 새로 단장한 점포가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고, 다른 곳은 개업을 위한 단장에 한창이었다.
프놈펜에는 간선도로 서너개 외에는 거리 이름이 따로 없이 번호로만 표시돼 있다.
프놈펜 중앙시장에서 얼마 멀지 않은 96번가에 위치한 경제연구원의 유옥 응오이 부원장은 이 같은 프놈펜 시가의 외견상 부산한 움직임에 대해 국가장래에 대한 긍정적 현상이라고 평가하면서도『그러나 93년 총선을 해봐야 모든 기업·상업, 그리고 제반 경제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응오이 부원장은 캄보디아는 오랜 내전을 겪으며 교통·통신·인력·기술 등에서 모든 기력을 상실하다시피 했다고 분석하고 SNC구성과 UNTAC의 설치로 국내 전체상황은 안정됐으나 프놈펜 시내는 오히려 정치불안이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SNC와 UNTAC의 등장으로 훈센 정부는 권력장악의 한계에 이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전 프놈펜 시민들은 훈센 정부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프놈펜의 거의 대다수 지식인·기업인·공무원, 심지어 2년전만해도 한산했던 거리에 최근 부쩍 숫자가 늘어난 구멍가게 주인들도 93년 이후의 국가 장래에만 관심을 갖고 오늘의 캄보디아에는 기대도, 미련도 갖지 않고 있다.

<정부형태 최대 관심>
중앙시장 부근에서 기념품 가게를 최근 개업한 라이 속체아르씨(30·여)는 가게확장 가능성에 대해『93년이 돼봐야 알겠다』고 말했다.
프놈펜 시민들은 93년 총선 후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만 최대의 관심을 갖고 있다
프놈펜의 지식인들은 오늘의 경제활동이나 사회제도·교육제도는 나중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어떤 형태의 제도나 기업방향을 설정, 이를 추진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하고 있다.
프놈펜에서 국제무역 및 기업 알선 중개를 하고 있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샘씨(34)는 『현재 프놈펜 시민이 장사에 열심인 것은 93년 이후 완전치 다른 정부·제도가 정착될 때 도약의 발판을 미리 마련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그 도약의 발판은「자금」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사실상 93년에 대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93년에 대비한 사회분위기는 정부와 일반시민의 대조적 행동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정부 재산 마구 팔아>
훈센 정부는 나날이 고갈되는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재산을 외국기업에「거의 무차별」로「팔아 넘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프놈펜의 한 젊은 지식인은 이 같은 정부재산 팔아 넘기기 과정에서 공무원이 전반적으로 부패해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사회불안의 중요원인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정부 지식인들은 공무원 부패를 93년이 오기까지 한몫 잡아두자는 정부와 하부기관의 공통된 한탕주의 탓이라고 냉소적으로 비판했다.
훈센 정부는 최근 프놈펜 시내 8층 짜리 국가소유 빌딩을 외국인에게 1백만 달러라는「헐값」에 넘겼으며 각종 국가소유 주택·건물·공장, 심지어 정부기관 건물마저 살 사람만 있으면 팔고 있다는 것이 외국인들의 비아냥 섞인 실명이다.
한 정부관리는 이 같은 정부의 방침이 『서글프다』고 말하면서도『훈센 역시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40세의 이 관리는 훈센 정부가 공무원 봉급을 지급하지 못해 봉급재원 마련에 혈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8개월간 봉급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그마저 최근 다섯 달치 봉급을 한꺼번에 손에 쥔 공무원 일부는 그 전 3개월의 봉급을 아예 지급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시민들의「93년 기다리기」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무원을 비롯, 일반 가게주인·대학생, 그리고 심지어 식당 종업원 등 수많은 사람이 영어공부 붐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93총선 이후가 되면 영어을 구사하는 사람만이 도약의 기회를 맞게된다고 믿고있다.
프놈펜 중심가에 위치한 파일린 호텔의 청소부인 17세의 한 소녀는 호텔 복도구석에 마련된 자그마한 책상 앞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영어공부에 몰두했다.
가게주인 체아르씨도 지난 4개월 동안 영어 가정교사를 집으로 불러 남편과 함께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프놈펜의 외국어 공부 열기는 시아누크가 머물고 있는 왕궁에서 멀지 않은 186번가에 늘어선 사설 영어학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 곳에는 초급에서 중급에 이르는 영어강좌 코스 소개 벽보와 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각 교실에는 적게는 10여명, 많게는 40여명이 열심히 강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두렵지만 희망적"
프놈펜의 영어공부 열기는 캄보디아에서 주요한 교육기관 역할을 맡고 있는 불교사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시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새 시장」오레세이 시장 앞에 있는 사원 프라 푸트의 국민학교는 정규수업이 없는 이른 아침과 점심시간, 하학후인 오후5시30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사설영어강좌를 마련하고 있다.
프놈펜의 노동신문에서 기자를 하다 그만두고 영어 강사를 하고 있다는 킨찬씨(24)는 하루 평균 4백여명이 영어강좌에 출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킨찬씨는『앞으로 영어를 모르면 낙오한다는 생각이 일반 시민들의 머리 속에 가득 차 있다』고 전했다.
통역을 맡았던 손씨(44)는 프놈펜을 이렇게 요약했다.
『프놈펜 시민들의 머리는 1993년을 살고있다. 반면에 몸은 92년을 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머리와 몸이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캄보디아 현실이며 이것이 프놈펜 시민들이 겪고 있는 신심분리 고통의 원인이다』
그는 그러나 93년 이후의 장래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93년이 되면 어떤 방식이든 프놈펜은 대 폭발을 할지도 모른다』
그는 두려움과 희망을 함께 갖고 있었다. 【프놈펜=글·사진 진창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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