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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은행 맡기면 이행강제금 안 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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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2004년 강원도 홍천군에서 투자용으로 밭 450평을 사들인 이모(43·서울 강남 거주)씨는 요즘 속이 쓰리다. 당시 그는 외지인이 농지를 살 때 면사 무소에 제출하는 농지취득자격증명 신청서에 구입목적을 ‘농업용’으로 적어내 이 땅을 샀다. 그런데 얼마 전 홍천군은 ‘구입 목적대로 농사를 짓지 않는다’며 이씨에게 이행 강제금 부과를 통지했다.
 그는 “이행 강제금을 물지 않으려면 땅을 팔아야 하지만 주변 중개업소에 내놔도 거들떠 보는 사람조차 없다”며 하소연했다. 이씨는 기한 내 땅을 팔지 못하면 매년 180만원 가량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현행 농지법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땅 주인에게는 처분 의무 기간(1년6개월)을 주고, 이 기간내 땅을 팔지 못하면 이행 강제금(공시지가의 20%)를 내도록 하고 있다. 이행 강제금은 ‘자경(직접 농사 짓는 것)’하지 않는 땅 주인에게 물린다. 이때 자경의 기준은 ‘농작업의 50% 이상을 자신의 노동력으로 경작하는 경우’라고 농지법에 정해져 있다. 정부는 해마다 9∼11월에 농지 이용실태 조사를 벌여 자경하지 않는 땅을 적발, 처분토록 하고 있다.

 이씨는 그동안 수확물을 나누는 조건으로 현지 주민을 고용, 고추·호박 등을 대리경작하는 방법을 통해 이 같은 정부 단속을 피해 왔다. 이러면 담당 공무원이 실제 경작 여부를 직접 조사하지 않는 한 적발이 사실상 어려워 벌금 부과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2004년부터 땅 투기를 막기 위해 단속을 강화하면서 이마저 쉽지 않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씨의 경우 농지은행에 ▶농지임대 ▶매도위탁 등의 방법을 통해 이행 강제금 부과를 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농지은행에 맡기면 이행강제금 안 물어=농지은행은 도시자본을 농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2005년 10월부터 설립됐다. 외지인이 농지를 매입해 맡기면 이를 현지 전업농 등에게 임대하거나 매각해준다.
  땅 주인이 농지 임대를 위탁하면 농지은행은 서류검토와 현장조사를 거친 뒤 대신 경작해줄 농민을 물색, 농지 임대차 계약체결을 도와 준다. 이렇게 하면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땅 주인에게 부과되는 이행 강제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계약기간(5년) 동안 약정된 임대료도 매년 받을 수 있다.

 이때 땅주인이 농지은행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연간 임대료(2006년 전국 평균, 3000평 기준)는 논 169만원, 밭 100만원, 과수원 171만원, 기타 103만원 수준이다. 농지 임대료는 별도로 정해진 요율표는 없다. 다만 농지은행은 지역별로 임대료 상한선을 정해 이 범위 안에서 땅 주인과 협의, 임대료를 결정한다. 농지 임대가 결정되면 땅 주인은 임대 위탁 수수료(연 임대료의 8∼12%)를 농지은행에 내야 한다. 임대기간(5년)이 만료된 농지는 횟수에 상관없이 재임대할 수 있다. 도중에 임대계약을 해약할때는 잔여 기간 임대료의 20%을 위약금으로 임차 농민에게 지급하면 된다. 임대 중인 농지를 도중에 처분하려면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
 이행 강제금 부과를 피해 땅 주인이 농지를 처분하려고 내놔도 팔리지 않을 때는 농지은행에 매도를 위탁하면 된다. 농지은행은 지난해부터 외지인 소유 농지를 농민에게 대신 팔아 줄고 있다.

 땅주인이 농지 매도를 위탁하면 농지은행은 매수자 알선, 가격 협의 등을 대신해 준다. 이때 농지은행은 거래금액의 0.6~0.9% 정도를 수수료로 매도자(땅주인)로부터 받는다.
 여건상 농지은행 위탁이 어려운 땅 주인은 직접 농사를 지어야 이행 강제금 부과를 피할 수 있다. 이른바 ‘자경’ 기준을 갖추는 것이다. 농지법에서 자경을 판단하는 기준은 ‘농작업의 50% 이상을 자신의 노동력으로 경작하는 경우’다. 이때 담당 공무원은 땅 주인의 정확한 노동 투입량을 산정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공무원들은 주변 농민들을 통해 땅주인의 자경 여부를 판단한다.

 강원도 평창군 농지 담당자는 “땅 주인들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은 경우 이행강제금 대상이지만 인력이 달려 일일이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며 “보조 수단으로 농자재 구입 영수증, 영농일지 등의 소명 자료를 제출받아 자경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의사항 없나=농지은행 임대나 매도 위탁이 불가능한 농지도 있어 땅주인들은 주의가 필요하다. 이미 지방자치단체에서 처분명령이 내려진 농지는 농지은행 임대 위탁이 불가능하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농지 이용실태 조사를 통해 땅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사실이 적발되면 ‘처분지시’를 내리고 1년 이내에 농지를 처분토록 하고 있다. 이 기간 내 농지를 팔지 않으면 다시 ‘처분명령’을 내리고 6개월 안에 땅을 팔도록 하는데, 이런 땅은 농지은행 임대 위탁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또 도시지역·계획관리지역 내 농지, 신도시 등 개발예정지 내 농지, 취득한 지 1년 미만인 농지 등은 농지은행 임대나 매도 위탁이 안 된다.

김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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