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살인하지 말라? 욕망·증오 … 매순간 '나'를 죽이진 않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약의 요한서한을 보면 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살인자는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요한1서 3장15절).'

남을 죽이지 말라는 말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미워하는 것만으로도 살인자라니요. 한번 따져 볼까요. '살인'이 뭔가요? 사람을 죽이는 일, 생명을 죽이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빚으실 때 불어넣었던 생명, 그 온전한 숨결을 죽이지 말라는 얘기죠.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 먹으며 그 '생명'을 죽여 버렸죠. 처음부터 살아있던 자신을 죽이고 만 거죠. 어찌 보면 그게 인류 최초의 '살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악마의 자식이고, 살인자의 자식'이라고 하신 겁니다("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요한복음서 8장44절"). 게다가 우리에겐 이 '최초의 살인'을 되풀이하고픈 강력한 욕망이 쉴 틈 없이 꿈틀대거든요.

사실 우린 매순간 '살인'을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남'이 아니라 '나'를 죽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가짐과 집착, 욕망과 증오만큼 상처를 깊이 남기는 칼날도 없습니다. 이런 칼날을 우린 끊임없이 '내 안의 생명, 하느님의 숨결'을 향해 휘두르고 있지 않나요. 이게 바로 '살인'입니다.

논란이 일더군요. '버지니아 공대 참사'의 범인 조승희의 추도석에 꽃을 놓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게 타당한가, 아닌가. 그도 역시 구원의 대상이었나, 아니었나.

저는 감히 단언합니다. 그는 아주 절절한 구원의 대상이었습니다. 왜냐고요? 그가 살았던 삶 자체가 '지옥'이었기 때문이죠. 고립과 외로움, 단절과 열등감으로 범벅이 된 그의 생. 그건 상처로만 굴러가는 고통의 쳇바퀴였겠죠.

조승희는 권총을 들고 밖으로 나가기 훨씬 전에 사실 '살인'을 범했습니다. 세상과 인간,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받았을 상처와 상처, 또 상처를 쌓고 쌓아서 끝내 자신을 죽이고 만 거죠. 자신 안에 숨 쉬던 온전한 숨결을 스스로 끊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매순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살인'을 범했는가.

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