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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동포들의 힘찬 재기를 빈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LA의 한인교포들이 흑인폭동으로 인명과 재산상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는 소식에 접하면서 우리는 같은 핏줄로서의 진한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 정다운 가족·친구·친지들과 헤어져 낯선 땅에서 문자 그대로 피땀으로 이룩한 결실이 하룻밤새에 잿더미가 되었을때 느낄 허탈감과 절망감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가 그 슬픔과 고통을 몇마디 말로써 위로할 길은 없다. 다만 멀리서 심정으로나마 그것을 같이 나누고자 하는 한 핏줄들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고 그를 한가닥 위안으로 삼기를 바랄 뿐이다.
그동안 LA지역의 우리 교포들은 짧은 시일안에 놀랄만한 번영을 이뤄 미국내에서도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이민사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한 성공이 질시의 대상이 되어 이번 폭동에서 한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결과를 가져오긴 했으나 국내의 동포들은 늘 LA교포들의 성공을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여겨 민족적 자랑거리로 삼아왔다.
한인점포의 70%가 파괴,약탈당하는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상처가 빠른 시일내에 아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우리 교포들이 보여주어 온 능력과 의지에 비추어 슬픔과 허탈감을 딛고 다시 일어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동포애로 그것을 격려하고자 한다. 이미 LA 한인타운에서는 재건을 위한 대규모 집회가열렸고 그 첫걸음으로 잿더미가 되고 난장판이 된 상가의 공동청소작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욱 더 그러한 믿음이 굳어진다.
다만 우리가 교포들에게 노파심에서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번 일이 한·흑간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엄청난 피해를 본 이상 흑인에 대한 감정이 더 나빠졌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정대로라면 보복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이번 폭동이나 그동안의 한·흑간 갈등은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흑백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 결코 한·흑간의 문제에서 파생된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흑백문제를 우리 교포들이 떠맡을 우려가 있다. 또 어차피 앞으로도 흑인들과 이웃해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다. 넓은 가슴으로 흑인들을 이해하고 긴 눈으로 문제를 보아 감정을 삭이며 뒷 수습에 이성으로 대처해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이번 LA흑인폭동과 한인의 피해는 우리들에게 다른 인종이나 국민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조화점을 모색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임을 일깨워주었다. 이제까지는 그것이 거의 전적으로 개개인에게 맡겨져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도 5백만명의 우리 핏줄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거니와 우리 여건상 앞으로도 우리 민족은 대외지향적일 수 밖에 없는 이상 이 문제에 대한 정책수립이 시급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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