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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상장사 부도/양재찬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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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개방된지 4개월이 지난 우리 증시에 상장된지 석달밖에 안된 이른바 「유망중소기업」(신정제지)이 쓰러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상장후 최단시일 부도라는 기록을 세운 이 회사의 족적은 마치 한편의 「사기극」을 방불케 한다.
이 회사의 증시상장일은 지난 1월23일. 첫날 주가는 발행가 6천원보다 8천5백원이 높은 1만4천5백원까지 비정상적으로 뛰었다. 1주일만인 2월1일부터 이 회사에 출자해 공개시키는데 기여했던 대신개발금융과 대신첨단산업 투자조합은 갖고 있던 주식 25만6천주씩을 갖고 열심히 팔기 시작,상장후 한달도 안돼 지분율은 0%가 됐다. 「단물」을 다 빼먹고 「인연」을 끊은 것이다.
국내 굴지의 증권사 대신증권의 자회사인 두회사가 이렇게 해서 챙긴 차익은 모회사인 대신측의 설명에 따르면 12억3천만원이다. 대신측은 당시 대신개발금융이 적자였고 투자원금을 빨리 회수해 다른 벤처회사에 투자하기 위해 주식을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창업투자업계에서는 대신의 주식매각이 너무 빨랐고 최소한 상장후 몇달정도는 지켜보았어야 했다며 상식에 어긋난 일이라고 지적한다.
부도를 내고 잠적한 신정제지 대표의 모친·매형 등 특수관계인도 대신에 이어 지난 2월중 3만8천5백30주나 팔았다. 당시 주가는 1만7백∼1만2천1백원이었는데,이들이 팔고 난후 8천원대로 주저앉았다.
이들은 법정신고일인 지난 3월10일 증권당국에 이같은 주식을 팔았다고 신고해왔다. 그러나 이때 증권당국이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감」을 잡았다 하더라도 이미 때는 늦은 일이었다.
증권감독원은 지난해 상장사의 부도가 잇따르자 8월부터 그동안의 서면심사대신 현장실사를 통해 장부상에 적혀있지 않은 부채등을 가려내는 실질검사제도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상장 3개월만에 부도가 나 감독원이 도대체 무엇을 실사했느냐는 물음이 나온다.
신정제지는 공개를 앞두고 1년전부터 50억원에 이르는 「물타기성」 유상증자를 해 공개요건을 맞췄다. 이같이 이번 사건은 기업공개정책의 허점,기업의 변칙회계,회계법인의 부실감사,부도전 대주주의 주식대량매각 등 기업공개와 관련한 증시부조리의 「종합판」이라 하겠다. 5월1일은 공교롭게도 증권거래소가 새 보조지표로 수정주가평균을 처음 발표하는 날이다. 증권당국은 침체를 활황으로 「둔갑」시키는 엉뚱한 통계만드는 일에 신경쓸게 아니라 입버릇처럼 이는 「증시주변 환경개선」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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